얀 브뤼헐 더 아우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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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브뤼헐 더 아우더'''({{llang|nl|Jan Brueghel de Oude|얀 브뤼헐 더 아우더}}, [[1568년]] [[1월 13일]] ~ [[1625년]] [[1월 13일]])은 [[플란데런]]의 화가이다.
 
== 생애 ==
얀 브뤼헐은 [[브뤼셀]]에서 화가인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화가인 [[피터르 브뤼헐 더 용어]]의 남동생이기도 하다. 1569년에 얀 브뤼헐의 아버지였던 피터르 브뤼헐이브뤼헐 더 아우더가 사망했고 얀 브뤼헐의 어머니였던 마리아 쿠커 판 알스트(Maria Coecke van Aelst)도 1578년에 사망하고 만다. 얀 피터르 브뤼헐은 자신의 남동생인 피터르, 자매인 마리(Marie)와 함께 화가로 활동한 할머니인 마이컨 페르휠스트(Mayken Verhulst) 밑에서 성장하면서 그림을 배우게 된다.
 
얀 브뤼헐은 자신의 남동생인 피터르 브뤼헐과 함께 [[안트베르펀]]으로 이주한 이후에 미술품 수집가인 페터르 훗킨트(Peter Goetkint), 정물화가인 힐리스 판 코닝크슬로(Gillis van Coninxloo) 등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얀 브뤼헐은 자매인 마리와 함께 가족들이 거주했던 독일 [[쾰른]]을 방문했고 나중에 플란데런인 공동체가 있던 프랑켄탈을 방문하게 된다. 1589년부터 1596년까지 이탈리아 [[나폴리]], [[로마]], [[밀라노]]에 거주하면서 정물화, 풍경화를 비롯한 다양한 그림을 제작했는데 특히 밀라노 대주교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페데리코 보로메오(Federico Borromeo) 추기경이 얀 브뤼헐의 후원자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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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브뤼헐은 1604년 여름에 [[신성 로마 제국]]의 [[루돌프 2세 (신성 로마 황제)|루돌프 2세]] 황제의 궁정이 있던 [[프라하]]를 방문했다. 1606년에는 남네덜란드의 총독을 역임했던 [[알브리히트 7세 폰 외스터라이히 대공]]과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데 에스파냐 왕녀]] 부부의 궁정 화가로 임명되었다. 1604년 9월에는 안트베르펀에 작업실을 설립했으며 1625년에 [[콜레라]]로 사망했다.
 
얀 브뤼헐은 처음에는 주로 꽃과 과일을 비롯한 정물화를 제작했지만 나중에 풍경화를 제작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성서]], [[신화]], [[우화]], [[역사]]와 관련된 그림을 제작했다. 얀 브뤼헐은 자신의 절친이었던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함께 17세기 플런데런을 대표하는 양대 화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얀 브뤼헐의 아들인 [[얀 브뤼헐 더 용어]]도 화가로 활동했다.
 
{{위키공용분류}}
{{전거 통제}}
{{기본정렬:브뤼헐, 더 아우더, 얀}}
 
[[분류:1568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