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숙: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Drawnevent (토론 | 기여)
새 문서: '''유인숙'''(柳仁淑, 1485년~1545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원명, 호는 정수, 시호는 문정, 본관은 진주이다. [[1510...
(차이 없음)

2009년 9월 30일 (수) 18:35 판

유인숙(柳仁淑, 1485년~1545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원명, 호는 정수, 시호는 문정, 본관은 진주이다.

1510년 문과에 급제해 이조좌랑, 직제학, 동부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1519년 기묘사화에 휘말려 투옥되었다가 정광필의 변호로 석방되고 1520년 무고를 받았으나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

1521년 다시 신사무옥으로 투옥되어 기회주의자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하고 17년 동안이나 두문불출을 하였다.

1537년 복직되어 한성부좌윤, 대사헌과 대사간, 각 조의 판서를 거쳐 1545년 우찬성 겸 의금부부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윤원형, 이기 등이 일으킨 을사사화에 휘말려 사형당했다.

1546년에는 경기 감사 김명윤의 밀고로 계림군봉성군을 왕으로 추대할 역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부관참시 효수되고 가산이 몰수되었으며 가족들도 모두 사형당했다.

1570년 역모죄명이 신설되고 관직도 복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