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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위나라는 이미 조조 때에 후한의 제후국으로 건국되으므로, 문제가 제위에 오른 것을 '건국했다'고 하는 것은 약간이나마 틀렸다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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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초 (위)|황초]](黃初) 4년([[223년]])에는 정위(廷尉)로 승진하였다.
 
[[조예|명제]](明帝) 즉위 시에는 연수정후(延壽亭侯)에 봉해졌으며, [[정시 (위)|정시]](正始) 7년([[246년]])에는 태상(太常)이 되었고 10일 후에는 사공(司空)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사도(司徒)로 전임하였다.
 
[[가평 (위)|가평]](嘉平) 원년([[249년]]), [[사마의]](司馬懿)가 [[조상]](曹爽)을 숙청했을 때 고유는 황태후의 조칙으로 가절행대장군사(假節行大將軍事)에 임명되었고, 조상의 진영을 점거하는 공적을 세워 만세향후(萬歲鄕侯)에 봉해졌다. [[조모]](曹髦)가 즉위하였을 때는 안국후(安國侯)에 봉해졌으며, 태위(太尉)에 임명되었다. [[조환]](曹奐)이 즉위하였을 때는 식읍이 더해저 4천 호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