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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천도운동 ==
[[인종]] 10년(1132) [[묘청]]. [[정지상]]등이 서경 천도 주장에주장, 이자겸의 난으로 불탄 개경의 궁궐 수리 중지를 요청하자 이에 두 차례의 상소문을 올려 이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궁궐수리와 환어(還御)등을 주장하여 반대 입장을 취하였다취하여 관철시켰다.
이때 고려의 수도는 서경(평양). 개경(개성). 남경(서울). 동경(경주)이 있는데 묘청 등이 주장한 서경천도는 수도를 서경하나로 통합하자는 주장으로 이를 시행할 경우, 지방통치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반대한 것이었다.
 
정항은하지만 묘청등이 4경체제를 유지하여 지방의 민심 달랠 것을 주장하였으나 묘청등이서경으로 이를천도를 반대하여주장하자 서경파와기존세력인 개경파의 대립을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지만개경파의 반대에 묘청은 이러한 정항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개경파를 제거하고자 서경에서 봉기하다가 결국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토벌당하고 말았다.
정항도 묘청의 서경으로 천도하는 데에는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수도를 단일할 경우 북진정책을 추진할 때 한반도 남부의 지방세력이 반란을 일으킬 때 이를 효과적으로 진압하기 어려워 후방이 위태로울 것을 우려 오히려 북진에 큰차질이 생길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묘청은 이러한 정항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개경파를 제거하고자 서경에서 봉기하다가 결국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토벌당하고 말았다.
 
서경세력이 개경파 세력이 이끄는 관군에게 토벌된 해(1136)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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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사망하기 전 과거가 시행되었는데 지공거(知貢擧) [[최자성]](崔滋盛)이 시제를 잘못내어 간관들이 이를 무효화 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정항의 사위 [[김이영]](金貽永)이 합격하였기 때문에 환관에게 간청하여 취소시키지 못하게 하는 일면을 보였다.
 
== 주석 ==
[[분류:1080년 태어남]]
高麗史 列傳 鄭沆篇
네이버백과사전
두산백과사전
[
[[분류:1080년 태어남]]
[[분류:1136년 죽음]]
[[분류:고려의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