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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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http://www.jincheon.go.kr 수질관련정보]</ref>
 
=== 근대 한국의 상수도수돗물 역사 ===
조선 시대에 물과 관련된 생활상은 1912년에 발행된 “조선의 상수도”라는 자료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당시 서울의 경우 우물은 9,241개소가 있었는데, 그 중 12%인 1,091개만이 마시기에 적합하고, 나머지는 부적합했다고 한다. 사용 가구별로 보면, 우물을 사용한 가구는 총 3만 8호였는데, 그 중 42.5%인 1만 2,739호가 마시기에 적합한 물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57.5%는 마시기에 부적합한 물을 먹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하천물을강물을 이용하고 있던 가구도 8,107호로 전체 가구 수를 기준으로 보면, 다섯 가구 중 네 가구는 우물물을,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하천물을강물을 마시고 있었다. 근대 한국의 상수도수돗물 도입은역사는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2월 9일 미국인 콜브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 R. Bostwick)은 고종황제로부터 상수도 부설 경영에 관한 특허를 받았다. 그들은 이 특허를 1905년 8월에 영국인이 설립한 대한수도회사(Korea Water Works Co.)로 양도했고, 이 회사가 1906년 8월에 착공하여 1908년 9월 1일에 서울의 뚝도 정수장을 준공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서울 뚝도 정수장의 규모는 침전지 2개, 여과지 5개, 정수지 1개를 갖추고 하루 1만 2,500톤의 위행적인 물을 생산했다. 이 물은 당시 12만 5천 명에게 공급되는 것으로 계획된 것이었다.<ref>[http://www.kwater.or.kr 물정보관]</ref>
 
== 수돗물의 안전성 평가요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