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즙 파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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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무즙 파동'''(-汁波動)은 [[1965년]]도 대한민국 중학교 입시 문제에서
== 사건 개요 ==
[[1964년]] [[12월 7일]]에 치른 [[서울특별시
{{인용문|다음은
# [[찹쌀]] 1kg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 이것을 쪄서
# 이 밥에 물 3L와
위 3.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서울시 공동출제위원회는 보기 1번 ‘[[디아스타제]]’가 정답이라고 발표했으나, 2번
한편, 교육 당국은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시험 다음날인 [[12월 8일]]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다가, 반발이 가라앉지 않자 [[12월 9일]]에는 해당 문제를 아예 무효화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1번을 정답으로 선택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반발하자 다시 원래대로 디아스타제만 정답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다. 1점 차이로 명문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게 된
== 사건의 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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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형들은 “[[12월 21일|21일]] 오후에 김 교육감이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다면 자연 18번의 복수정답을 인정하겠으며, 탈락자들을 구제하겠다.’ 라고 언약했다.” 고 주장했고, '''‘이 엿을 먹어보라’''' 는 구호와 함께 실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오는 등 시교위와 김 교육감의 무책임한 자세를 힐난했다.<ref>{{웹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4122200209208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4-12-22&officeId=00020&pageNo=8&printNo=13282&publishType=00020 |제목 = 꼬리 문 소동 '자연 18번' 무우즙 엿 먹어보라 낙방 자모들 엿들고 시위 |확인일자 = 2011년 12월 8일 |작성일자 = 1964년 12월 22일 }}</ref>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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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대한민국의 창칼 파동]]
== 바깥 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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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040600209207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4-06&officeId=00020&pageNo=7&printNo=13370&publishType=00020 재채점 있을수 없다. 문교부서 "무즙" 판결에 표명] - 1965년 4월 6일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0330003292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3-30&officeId=00032&pageNo=3&printNo=5983&publishType=00020 '무우즙'도 정답 - 말썽난 중학입시 문제에 고법 판결] - 1965년 3월 30일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분류:제3공화국]]
[[분류:대한민국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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