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교육: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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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유학을 중심으로 한 문과 계통의 교육 기관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무과(武科) 계통의 교육 기관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이것은 조선 사회가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경멸한 결과 생긴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리고 특수 분야인 [[잡과]](雜科)계통의 교육 기관으로서는 태종 때에 [[십학]](十學)을 설치해 이학(吏學)·역학(譯學)·음양풍수학(陰陽風水學)·의학(醫學)·자학(字學)·율학(律學)·산학(算學)·악학(樂學) 등의 교육을 위한 시설을 두었다. 그러나 잡과는 특수한 신분층이 이를 세습하였기 때문에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한학(漢學)<ref>[[중국어]]</ref>·몽학(蒙學)<ref>[[몽고어]]</ref>·여진학(女眞學)<ref>[[만주어]]</ref>·왜학(倭學)<ref>[[일본어]]</ref>은 사역원(司譯院)과 어는 특정한 지방에서 의학(醫學)은 전의감·혜민서와 지방의 각 고을에서, 천문학·지리학·명과학(命課學)은 관상감에서, 주학(籌學)<ref>산학(算學)</ref>은 호조(戶曹)에서, 율학(律學)은 형조와 지방의 각 고을에서, 화학(畵學)은 도화서(圖畵署)에서, 도학(道學)은 소격서(昭格署)에서 각각 일정한 수의 학생을 가르쳤다.
 
== 개화기의 교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