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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이종가'''(李從珂, 885년 ~ 936년)는 오대십국시대후당의 마지막 황제이다. 시호는 말제(末帝) 혹은 폐제(廢帝)로 불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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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鎭州, 현재의 하북성 정정현(河北省正定縣))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어머니 위씨(魏氏)와 함께, 후에 후당 명종이 되는 이사원에 납치되어, 그 뒤에 이사원이 양자로 되어 이종가로 불리게 되었다. 성장하면서 모습은 웅장하고, 싸움에 대해 용맹하였고 의부 이사원의 총애를 받는다.
 
이사원이 즉위 하고, 이종가는 하중절도사(河中節度使)에 임명되지만, 추밀사인 안사회[[안중회]](安誨)와 권력 쟁탈에 패배하여 [[930년]](장흥 원년)에 모든 지위를 잃고, 수도인 낙양에 거주하게 된다. 그러나 [[931년]]에 안사회가 실각하자, 이종가는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으로 중용 되어중용되어, [[932년]]에는 봉상절도사(鳳翔節度使)에게 임명되여 그 후에 [[933년]]에 왕으로 봉해졌다.
 
이사원이 [[933년]]에 사망하자, 이종후가 황제로 즉위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934년]](응순 원년) 이종후는 대신들의 제안을 받아 들여 절도사의 권력을 억제하여 약체화를 시키는 계획하였다. 이종가는 이 정책에 대해 반대를 표명하여, 마침내는 군사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이 내란에 패배한 이종후는 폐위되고, 결국 이종가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민제 이종후를 살해한 이종가는 낙양 입성 후에 후당의 황제로 즉위 하여, 연호를 청태(泰)로 개원하였다. 당초에는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를 지낸 황제 이사원의 사위인 [[석경당]](石敬瑭)과 동맹 관계였고, 이종가가 즉위 한 이후에는 석경당을 의심과 경계를 하였다. [[936년]]에 석경당을 태평절도사천평군 절도사(天平節度使)으로 좌천을 시켜 임명하여, 석경당은 불만을 품어서, 석경당은 요나라와 손잡아 군사를 일으켰다.
 
석경당이 요나라의 군대를 이용하여 낙양을 포위하였고, 패색이 짙은 이종가는 937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후에 시호 및 묘호는 주어지지 않지만, 후세의 역사가들은 말제 또는 폐제라는 [[사시 (시호)|시호]]를 주었다.
 
{{전임후임
|전임자 = 의제 [[후당 민제]] [[이종후]]
|후임자 = (멸망)<br>([[석경당]])
|대수 = 4
|직책 = [[후당]]의 황제
|임기 = [[934년]] ~ [[936년]]
|앞이름 = 전 임
|뒤이름 = 후 임
}}
 
[[분류:885년 태어남]]
[[분류:936년 죽음]]
[[분류:허베이 성 출신]]
[[분류:진 (오대)의 장군]]
[[분류:호국군 절도사 (후당)]]
[[분류:봉상절도사 (후당)]]
[[분류:후당의 황제]]
[[분류:자살한 사람]]
 
[[en:Emperor Mo of Later T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