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장 (何如璋, 1838년 ~ 1891년)은 중국 청나라 말기의 외교관이다. 호는 자아 (子峨)이다.

하여장

생애 편집

광둥성 다부 출신으로, 1868년 진사가 되어 한림원에 들어갔다. 1877년 초대 주일 공사로 임명되어, 3년 간 공사로 지냈다. 1879년 류큐 처분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하여장은 일본의 조치 강행에 대해 항의했다. 이 시기에 남긴 책으로, 일본에 머무르면서 메이지 유신을 지켜본 기록과 평가를 담은 《사동술략》 (使東述略)이 있다. 청나라로 돌아온 뒤에는 복주(福州)의 선정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청불 전쟁 당시의 마강 해전장패륜 등과 후퇴하면서, 11척의 함정과 700명의 병사를 잃고, 마미선창이 함락당하자 책임을 지고 면직당했다. 이후 양광총독 이한장의 초청으로 한산서원(韓山書院)의 주강(主講)이 되었다.

기타 편집

  • 조선책략》을 만든 황준헌은 하여장이 주일 공사로 있을 때 그 밑에서 일한 참사관이었다.[1]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중앙일보, [박보균 칼럼] 중국의 역사적 비원, 2016.9.2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