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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름연맹

한국씨름연맹은 한민족의 문화유산인 씨름의 계승․발전과 강인한 민족정신의 함양 및 국민체력 향상을 도모하고 씨름의 세계화를 통하여 체육한국의 위상 제고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1981년 11월 30일 창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비영리 사단법인 단체이다.

1983년 4월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를 개최하며 프로씨름을 출범시켰으며 200여회에 달하는 국내외 프로씨름대회의 개최를 통해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강호동, 이태현, 최홍만 등 16명의 천하장사와 29명의 백두장사, 37명의 한라장사, 29명의 금강장사, 12명의 태백장사 등을 배출해 온 우리나라의 제2호 프로스포츠 단체이다.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 53-4 옥당빌딩 501호에 있다.


한국씨름연맹의 창립과 프로씨름의 출범편집

한국씨름연맹은 1981년 11월 30일 프로씨름 대회의 개최를 위해 창립된 '한국민속씨름협회'가 모태다.

한국민속씨름협회는 1983년 4월 14일 한국방송공사(KBS)와 공동 주최로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를 개최하며 씨름을 우리나라 제2호 프로스포츠로 출범시켰다.

한국민속씨름협회는 이후 1983년 9월 5일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한씨름협회와 통합하여 한국민속씨름협회의 허완구 회장이 통합회장을 맡아 대한씨름협회를 운영하고 프로씨름은 ‘민속씨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던 중 1990년 9월 29일 사단법인 한국민속씨름협회로 분리, 독립하였으며 1996년 2월 7일 현재의 명칭인 사단법인 한국씨름연맹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씨름연맹은 ‘천하장사씨름대회’, ‘설날장사씨름대회’, ‘추석장사씨름대회’, ‘지역장사씨름대회’ 등의 프로씨름대회를 개최하며 ‘천하장사’, ‘백두장사’, ‘한라장사’, ‘금강장사’, ‘태백장사’ 등을 선발하고 있다.

체급명칭의 유래편집

한국씨름연맹이 사용하는 ‘백두’, ‘한라’, ‘금강’, ‘태백’이라는 체급명칭은 한국씨름연맹이 출범당시 전국민 응모를 통하여 선정한 명칭이다.

한국씨름연맹은 프로씨름의 출범을 앞둔 1983년 3월 19일부터 31일까지 신문과 방송 광고를 통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체급명칭을 공모하여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수백통의 응모작 중에 강남구 삼성동에 거주하는 ‘오제하’씨가 응모한 ‘백두장사’, ‘한라장사’, ‘금강장사’, ‘태백장사’ 라는 명칭을 당선작(당선상금 100만원)으로 선정하여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 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명칭이다.

민속씨름의 의미편집

‘민속씨름’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우리 한민족의 전통씨름’, ‘민속경기로서의 씨름’이라는 의미와 함께 ‘프로씨름’이라는 의미가 같이 담겨 있다.

이는 프로씨름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창립된 ‘한국민속씨름협회’가 처음엔 ‘한국프로씨름협회’라는 이름을 사용하려 하였으나 ‘씨름에 영어단어(프로)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반론으로 인해 초기 ‘한국직업씨름협회’라는 이름으로 설립취지문을 발표했다가 고심 끝에 ‘용인민속촌’에 영감을 얻어 ‘한국민속씨름협회’이라는 명칭으로 단체를 설립한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로 인해 ‘프로씨름’을 다른 말로 ‘민속씨름’이라 부르며 프로씨름대회 출신 선수들을 ‘민속세대’라 부르고, 프로씨름선수들이 모여 만든 친목단체의 이름을 ‘민속씨름동우회’라 부른다.

프로씨름의 침체와 분열편집

한국씨름연맹이 주최하는 프로씨름대회는 한 때 8개 씨름단이 참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1997년 IMF금융위기 이후 씨름단이 줄줄이 해체되며 3~4개 씨름단만이 남아 겨우 프로씨름의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던 2004년 LG씨름단이 모기업인 LG투자증권이 LG카드 사태로 인해 ‘우리증권’에 인수되면서 2004년 12월 해체되기에 이르렀고 이에 남은 2개 씨름단(현대, 신창)만으로는 대회개최가 불가능해지자 한국씨름연맹은 씨름단의 신규 창단이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대한씨름협회와 협의하여 지자체, 실업씨름단을 대회에 참여시켜 함께 대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자 신창씨름단이 이에 반발하며 대회출전을 거부하다가 2005년 씨름단을 해체하고 말았다.


한국씨름연맹은 2005년 9월 30일 대한씨름협회 최창식 회장과 선수파견에 관한 협약을 맺고 대한씨름협회 소속 지자체, 실업씨름단을 한국씨름연맹이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시켜 지역연고제를 근간으로 하는 민속씨름대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나서 일본대회와 구미, 안동, 부산대회 등 2006년 11월까지 총 8번의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2006년 12월 대한씨름협회는 느닷없이 ‘민속씨름이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한국씨름연맹과 맺은 업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는 2007년부터 독자적으로 민속씨름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고 한국씨름연맹이 대회를 개최하지 못하게 되자 프로팀인 현대씨름단이 2008년 한국씨름연맹을 탈퇴하여 대한씨름협회의 실업팀으로 대회에 참가하기에 이르렀다.


[프로씨름의 침체 원인]

프로씨름의 침체 원인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IMF금융위기로 인한 씨름단 해체

2. 기술씨름이 사라짐 (선수들의 몸집이 커지면서 기술씨름보다는 무게-힘씨름으로 바뀌고 이에 따라 작은 체구의 선수가 큰 체구의 선수를 넘어뜨리는 기술씨름의 묘미가 사라짐)

3. X-스포츠, 이종격투기, 온라인게임 등 보고 즐길거리가 다양해짐

4. 씨름단체간의 분열로 인한 변화와 개혁, 마케팅이 소홀해짐

씨름진흥법의 제정과 화합편집

2008년 씨름의 세계화를 위해 사단법인 세계씨름연맹이 창립되었고 이 단체의 주도로 2011년 4월 11일 국회에서 씨름활성화 방안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를 계기로 2011년 8월 이철우 국회의원 등 12명의 국회의원이 씨름진흥법 제정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였고 그해 12월 말 국회에서 통과되어 2012년 4월 씨름진흥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 시기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민속씨름활성화를 위하여 씨름단체 대표들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여러차례 개최하며 씨름단체간의 화합을 통한 활성화대책을 주문하였고 마침내 2013년 5월 2일 대한씨름협회와 한국씨름연맹이 다시 협약식을 갖고 민속씨름의 활성화를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화합하기로 하였다.

주요 사업편집

  • 각종 씨름대회의 주최 및 주관
  • 씨름에 관한 연구, 기술개발 및 보급
  • 씨름선수, 지도자 및 심판의 양성
  • 씨름의 육성, 발전을 위한 각종 지원
  • 씨름의 보급을 위한 출판 및 홍보활동 등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