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안보협의회의
한미안보협의회의(ROK-US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이하 SCM)은 대한민국과 미국 양국의 주요군사정책 협의 조정 기구이다. 국방장관 수준에서 주요 안보 문제를 협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에서 번갈아가며 연례적으로 개최하는 회의이다.
개요
편집한국과 미국과의 각종 안보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협의기구. 1968년, 제1차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시초로 매년 나라에서 교대로 열린다. 1971년부터는 두 나라의 국방장관을 대표로 하는 한·미 안보협의회로 정착되었다. 한·미 연합사령부의 창설 후 1978년부터, 두 나라간의 군사적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양국의 합참의장을 대표로 하는 군사위원회가 따로 설치, 운영되고 있다. 이 회의에서는 두 나라의 제반 안보 문제, 한반도 및 동북아의 군사적 위협 평가 및 공동대책 수립, 두 나라 사이의 긴밀한 군사협력을 위한 의사 조정 및 전달. 한·미 연합방위력의 효율권 건설 및 운영하는 방법을 토의한다.
역사
편집- 1968년 4월 17일, 1·21 사태 및 푸에블로 호 납치 사건 등으로 한미 양국간 안보협의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하와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한미 연례 국방각료회의'(Annual ROK-U.S. Defense Official Meeting)를 양국간 교대로 개최하기로 합의
- 1968년 5월, 제1차 한미 연례 국방각료회의 개최
- 1971년, 제4차 회의부터 '한미 안보협의회의'(ROK-US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로 명칭 변경
- 1977년 제10차 SCM,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에 합의[1]
- 1978년 7월, 제11차 SCM, 핵우산 최초 명시. 이후 모든 SCM 공동성명에 미국의 핵우산 제공(continued provision of nuclear umbrella)이 포괄적으로 명기.
-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10.26 사건)으로 이 해만 미개최. 이후 매년 열리고 있음.
- 1994년, 평시작전권이 44년만에 미군으로부터 한국군에 반환.
- 2006년 10월 9일, 북한 1차 핵실험
- 2006년 10월 20일, 제38차 SCM에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공약을 첫 명시, 핵우산에서 확장억제로 변경. 용어의 차이는 핵우산 참조. 또한 전시작전권을 2009년 10월15일 이후, 2012년 3월 5일 이전에 환수받기로 합의.
- 2011년, 제43차 SCM에서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신설에 합의하였다.
- 2014년, 제46차 SCM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시기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추후 협의하기로 합의.
- 2016년 9월 9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기능
편집한미 양국의 안보 문제 전반에 관한 정책 협의,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군사적 위협평가 및 공동대책수립, 양국간의 긴밀한 군사협력을 위한 의사조정 및 전달, 한미 연합방위력의 효율적 건설 및 운영방법을 토의하는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구성
편집안보협의회의는 양국 국방장관 회담을 중심으로 한 본회의와 이를 보좌하기 위한 정책검토위(PRS)와 안보협력위(SCC), 군수협력위(LCC), 방산·기술협력위(DTICC), 공동성명위(JCC) 등 5개 실무분과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이들 분과위원회는 SCM 개최 이전부터 모임을 갖고 의제선정 및 협상방향을 상호 점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타
편집한미연합사령부의 창설에 따라 양국간의 군사적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양국 합참의장을 대표로 하는 군사위원회회의(MCM)가 78년부터 매년 한미 안보협의회의와 같은 시기에 개최되고 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한미연합사령부(韓美聯合司令部)”. 2023년 11월 12일에 확인함.
- ↑ 이정진 (2021년 12월 2일). “[전문] 제53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 2023년 11월 12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