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면
충청남도 서산시의 면(面) 중 하나
해미면 海美面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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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Haemi-myeon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행정 구역 | 29리, 111반 |
법정리 | 22리 |
관청 소재지 | 해미면 남문2로 109 |
지리 | |
면적 | 68.27 km2 |
인문 | |
인구 | 8,773명(2013년 10월 31일) |
세대 | 3,805세대 |
인구 밀도 | 128.5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해미면 행정복지센터 |
개요
편집해미면은 조선의 500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해미읍성과 천주교 선열들의 순교 성지를 중심으로 서해안에서 제일 높은 가야산이 위치해 있다. 또한 황락․산수 계곡의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역사․문화가 공존하는 관광 도시이다.[1] 조선 태종은 해미에 충청병영을 설치하여 충청도 육군의 최고지휘자인 병마절도사가 머물며 당시 출몰하였던 왜구를 경계하였다. 이 역할은 1651년 청주로 충청병영이 옮겨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역사
편집해미면 휴암리에는 BC 8세기경에 조성된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백제 때 마시산군(馬尸山郡)의 영현으로 우견현(牛見縣)이라 했다.
- 정해현(貞海縣) 고려 태조 때 고구현(高丘縣) 땅을 떼어 정해현(貞海縣)으로 했다. 1018년(현종 9)에 운주(運州) 임내에 있다가, 감무(監務)를 두었다.
- 여미현(餘美縣) 본래 백제의 여촌현(餘村縣)인데, 신라에서 여읍현(餘邑縣)으로 고쳐 혜성군(槥城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여미현으로 고쳐, 1018년(현종 9)에 운주 임내에 있다가, 1106년(예종 원년)에 비로소 감무를 두었다.
1407년(태종 7)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해 해미현(海美縣)이라 했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두었다. 딸린 부곡(部曲)이 유솔(有率)이다.
행정 구역
편집- 관유리
- 귀밀리
- 기지리
- 대곡리
- 동암리
- 반양리
- 산수리
- 삼송리
- 석포리
- 양림리
- 억대리
- 언암리
- 오학리
- 웅소성리
- 읍내리
- 응평리
- 저성리
- 전천리
- 조산리
- 홍천리
- 황락리
- 휴암리
면사무소
편집해미면사무소 인근에 해미읍성이 위치해있으며 면사무소가 성 모양이다.
교육
편집본관 성씨
편집세종실록지리지에 해미의 토성은 정해현(貞海縣)에 (白·韓·仇·尹), 여미현(餘美縣)에 (郭·朴·明·余)이 있다고 했다.[2]
- 정해현(貞海縣)
- 여미현(餘美縣)
각주
편집- ↑ “인사말 - 읍면동”. 2022년 2월 14일에 확인함.
- ↑ 세종실록 지리지 149권, 충청도 홍주목 해미현 조 "http://sillok.history.go.kr/id/kda_40005004_004"
- ↑ 《만성시조약사(萬姓始祖略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