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군
해원군 이건(海原君 李健, 1614년 ∼ 1662년)은 조선의 왕족 종실이다.
해원군
海原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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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正) 군(君)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總府 都總管) | |
이름 | |
휘 | 이건 李健 |
별호 | 자(字)는 자강(子强) 호(號)는 규창(葵窓) |
시호 | 충효 忠孝 |
신상정보 | |
출생일 | 1614년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인성군 사저 |
사망일 | 1662년 (49세)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사저에서 병사 |
왕조 | 조선 왕조 |
가문 | 조선 왕조 전주 이씨 |
부친 | 인성군 이공 |
모친 | 군부인 해평 윤씨 |
배우자 | 군부인 풍산 심씨[1] |
자녀 | 슬하 4남 3녀 3남 화춘군 이정(花春君 李瀞) |
기타 친인척 | 조부: 선조 하성군 이연 사위: 심정기(沈廷耆) - 심지원(沈之源)의 손자 |
종교 | 유교(성리학) |
묘소 | ![]() |
생애편집
일생편집
인성군 이공의 3남(三男)으로 출생한 그는 일찍이 1619년 해원정(海原正)에 책봉되었는데 아버지 인성군이 반정공신 이귀(李貴)의 핍박 섞인 모함으로 인하여 모반역모 혐의를 받자 1628년을 기하여 형 해평군 · 해안군, 아우 해양군 등과 아울러 역신의 후손이라 하여 전라도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뒤 1635년 전라도 제주에서 경상도 울진으로 이배되었고 2년 후 1637년 석방되었다.
20년 후 1657년 해원군(海原君)에 진책되었으며 이후 청렴한 성품을 발휘하여 자신의 사저(私邸)에 조그만 서실(書室)을 짓고 그곳에서 한시와 시조를 작시와 아울러 서예와 서화에 열중하여 당시 사람들이 삼절(三絶)이라 칭하였다.
기타 이력편집
그의 저서에는 《규창집(葵窓集)》 등이 있다.
가계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 두산대백과사전 - 해원군 이건
- 대한제국 조선 황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 해원군 이건 Archived 2021년 10월 20일 - 웨이백 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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