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군비 경쟁
핵 군비 경쟁은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핵무기 경쟁을 한 사건이다.
핵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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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의 역사 |
핵무기 보유국 |
발단편집
미국이 맨해튼 계획으로 1945년에 원자 폭탄을 만들고, 실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터트리자 소련도 1949년에 원자 폭탄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소련의 핵 군비 경쟁이 시작되었다.
경과편집
미국은 원자 폭탄에 이어 1952년에는 수소 폭탄까지 만들었고, 소련도 1953년 수소 폭탄을 만들었다. 소련은 1953년 미국을 기술적으로는 따라잡았으나 핵무기 보유량은 1961년에도 미국이 여전히 크게 앞서고 있었다. 그래서 소련은 1961년 인간이 만든 무기 중 가장 화력이 큰 차르 봄바라는 핵무기(수소 폭탄)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중화인민공화국도 핵무기를 만들어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영국은 1952년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였고 1957년에는 수소폭탄 실험에도 성공하였다. 프랑스도 1960년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였고 수소폭탄 실험은 1968년에 성공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64년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였고 수소폭탄 실험은 1967년에 성공하였다.[1]
소련은 계속 핵 전력을 크게 증강시켜 1978년에는 마침내 핵무기 보유량에서 미국을 추월하고 세계 1위의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고 1982년에는 핵 전력에서 미국을 크게 앞서게 되었다. 이후에도 소련은 붕괴 이전까지 계속 세계 1위의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유지하였다.[2]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은 끝나게 되었다.
핵 군비 경쟁 후편집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가 핵무기를 만들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
각주편집
- ↑ “기술 흘리고 빼내고… 살벌한 ‘핵 핑퐁 게임’”. 시사저널. 2006년 10월 19일.
- ↑ “핵무기 없는 세상 아직은 이상일 뿐”. 경향신문. 2010년 3월 28일.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 Erik Ringmar, "The Recognition Game: Soviet Russia Against the W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