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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洪範圖, 1868년 10월 12일 (음력 8월 27일) ~ 1943년 10월 25일)는 조선 말기의 의병장이며,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 군인이다. 사냥꾼으로 활동하여 사격술에 능하였으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후에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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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洪範圖
1921년 당시 홍범도
1921년 당시 홍범도
출생일 1868년 10월 12일(1868-10-12)
출생지 조선 조선 평안도 평양 서문안 문열사 부근
(평안남도 양덕군 혹은 평안북도 자성군 설도 있다.)
사망일 1943년 10월 25일(1943-10-25) (75세)
사망지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기 카자흐 SSR 크질로르다
별명 범도(範道), 호는 여천(汝千)
종교 대종교
부모 아버지: 홍윤식

생애편집

평안도 평양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평안도 자성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평안도 양덕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머슴, 건설현장 노동자, 종이공장 노동자, 사냥꾼, 광산 노동자 등을 전전하였다.

의병과 독립군 활동편집

1895년경부터 의병에 뛰어들어 함경북도 갑산, 무산 등지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07년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에 자극을 받아 11월 갑산에서 산포대를 조직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삼수·갑산 등지에서 유격전을 펼치다 만주 간도로 건너가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10년 한일 병합 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으며, 1919년 간도 국민회의 대한 독립군 사령관이 되어 국내로 들어와서 일본군을 습격하였다. 후에 독립군의 통합운동을 벌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여 김좌진과 함께 부총재가 되었다.

봉오동 전투편집

1920년 일본군이 봉오동을 공격해 오자, 3일간의 봉오동 전투에서 120명을 사살하고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청산리 전투편집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북로군정서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강제 이주와 최후편집

1927년에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나, 1937년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 이주당했고, 그곳에서 집단 농장을 운영하였다. 1943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향년 76세의 나이로 죽었다.

사후편집

1963년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가족편집

  • 부친 : 홍윤식[1]
    • 부인: 이옥구 ( ~ 1908년) 일제의 고문으로 순국
    • 부인: 이인복 (1926년 러시아에서 재혼)
      • 장남: 홍양순 ( ~ 1908년) 정평배기 전투에서 아버지 홍범도 장군과 함께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
      • 차남: 홍용환 (일본군에게 고문당한 후 순국)

관련된 작품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여천홍범도장군 연보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