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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길옹주

조선 영조와 숙의문씨의 자녀

화길옹주(和吉翁主, 1754년 ~ 1772년 음력 12월 18일)는 조선의 왕족이다. 조선의 제21대 영조숙의 문씨의 서녀이다. , 본관전주이며,[1] 화령옹주의 친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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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길옹주
지위
옹주
신상정보
출생일 1754년
출생지 조선
사망일 1772년 음력 12월 18일
사망지 조선
매장지 화길옹주 묘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왕조 조선
부친 영조
모친 숙의 문씨
배우자 구민화
자녀 구명희, 김이초의 처, 윤영명의 처

목차

생애편집

가계편집

 
아버지 영조

1754년(영조 28년) 영조와 후궁 숙의 문씨의 딸로 태어났다. 화령옹주의 친동생이자 진종(효장세자), 장조(사도세자) 등의 이복 동생이며, 정조는 이복 조카이다.

한편 화길옹주의 생모 숙의 문씨는 사도세자를 무고했을 뿐 아니라 여러 불법을 많이 저지르는 바람에 정조가 즉위한 뒤 폐위되고 이내 사사되었다.[2]

옹주 시절과 사망편집

11살 때인 1764년(영조 40년) 음력 12월 11일 대장 구선행(具善行)의 손자이자 구현겸(具顯謙)의 아들인 구민화(具敏和)와 정혼하였다. 이때 구민화는 능성위에 봉해졌다.[3] 이듬해인 1765년(영조 41년) 음력 7월 12일 혼례를 올렸다.[4]

그러나 화길옹주는 1772년(영조 48년) 음력 12월 18일 불과 1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5] 죽은 지 5년이 지난 1777년(정조 1년) 그녀의 장례에 무려 10만냥이 지출되었던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6]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에 있다.[1]

기타편집

가족 관계편집

화길옹주는 남편 구민화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구명희이고, 두 딸은 각각 김이초와 윤영명에게 시집갔다.[1] 한편 1894년(고종 31년) 음력 4월 9일 화길옹주의 사손 구뢰서가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8]

왕가(王家 : 전주 이씨)

  • 아버지 : 제21대 영조(英祖, 1694~1776, 재위:1724~1776)
  • 어머니 : 숙의 문씨(淑儀 文氏, ?~1776)

시가 능성 구씨(綾城 具氏)

  • 시할아버지 : 구선행(具善行)
    • 시아버지 : 구현겸(具顯謙)
      • 남편 : 능성위(綾城尉) 구민화(具敏和, ?~1800)
        • 장남 : 구명희(具命喜, 생몰년 미상)
        • 장녀 : 능성 구씨 - 김이초(金履初)에게 출가
        • 차녀 : 능성 구씨 - 윤영명(尹永明)에게 출가

각주편집

  1.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화길옹주〉”. 2013년 9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7월 19일에 확인함. 
  2.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숙의문씨2〉[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조선왕조실록》영조 104권, 40년(1764 갑신 / 청 건륭 29년) 12월 11일(무자) 2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영조 106권, 41년(1765 을유 / 청 건륭 30년) 7월 12일(을유) 1번째기사
  5. 《조선왕조실록》영조 119권, 48년(1772 임진 / 청 건륭 37년) 12월 18일(무인) 1번째기사
  6. 《조선왕조실록》정조 3권, 1년(1777 정유 / 청 건륭 42년) 5월 21일(을유) 2번째기사
  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궁집〉
  8. 《조선왕조실록》고종 31권, 31년(1894 갑오 / 청 광서 20년) 4월 9일(을묘) 1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