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옹주
조선 영조와 숙의문씨의 자녀
화령옹주(和寧翁主, 1753년 음력 3월 2일 ~ 1821년 음력 9월 3일)은 조선의 왕족으로 영조의 11녀이며, 어머니는 숙의 문씨이다.
화령옹주
和寧翁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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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의 옹주 | |
신상정보 | |
출생일 | 1753년 3월 2일 (음력) |
사망일 | 1821년 9월 3일(음력) | (68세)
부친 | 영조 |
모친 | 숙의 문씨 |
배우자 | 청성위 심능건 |
자녀 | 1남 2녀 |
능묘 | 화령옹주묘
서울특별시 노원구 |
생애
편집가계
편집1753년(영조 29년) 3월 2일, 영조(英祖)와 숙의 문씨(淑儀 文氏)의 첫째딸로 태어났다.
옹주 시절
편집화령옹주는 1764년(영조 40년) 음력 10월 16일, 12세의 나이로 심정지의 아들 심능건과의 혼인이 결정되었다. 이때 심능건은 청성위에 봉해졌다.[1] 옹주와 심능건은 이 해 음력 12월 20일 가례를 치렀다.[2]
한편 화령옹주의 생모 숙의 문씨는 정조 즉위 직후 사도세자를 무고한 것 등으로 인해 사사되었다. 그러나 문씨의 두 딸은 여러 대신들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비호 하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작위도 모두 삭탈되지 않았다.[3]
한편 1781년(정조 5년) 음력 윤5월 25일에는 남편 심능건이 숙의 문씨의 생전 집을 멋대로 팔고 철거하는 바람에 삭직되었다.[4] 이후 다시 복작되었다.
사망
편집화령옹주는 1821년(순조 21년) 음력 9월 3일 6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순조는 옹주의 장례를 전례에 의하여 거행토록 하고, 장생전의 퇴판 1부를 보내주었다.[5] 현재 옹주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다.[6]
가족 관계
편집화령옹주는 청송 심씨 심능건과 혼인하였다. 심능건은 사은정사와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종척집사 등을 지낸 후 1817년(순조 17년) 음력 7월 7일에 죽었다.[7] 심능건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으나 한 명은 요절하였다.[8]
화령옹주가 등장한 작품
편집드라마
편집출처
편집- ↑ 《조선왕조실록》영조 104권, 40년(1764 갑신 / 청 건륭 29년) 10월 16일(갑오)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영조 104권, 40년(1764 갑신 / 청 건륭 29년) 12월 20일(정유) 3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정조 1권, 즉위년(1776 병신 / 청 건륭 41년) 5월 14일(갑신)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정조 11권, 5년(1781 신축 / 청 건륭 46년) 윤5월 25일(정묘)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순조 24권, 21년(1821 신사 / 청 도광 1년) 9월 3일(경술) 4번째기사
-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화령옹주〉”. 2013년 9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8월 10일에 확인함.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심능건〉
- ↑ 《청송심씨 대동보》
- ↑ 《청송심씨 대동보》
- ↑ 《청송심씨 대동보》
- ↑ 《청송심씨 대동보》
- ↑ 순조실록 20권, 순조 17년 7월 7일 기유 1번째기사
- ↑ 《청송심씨 대동보》
- ↑ 가 나 《선원계보기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