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스(중국어 간체자: 胡适, 정체자: 胡適, 병음: Hú Shì, 한자음: 호적, 1891년 12월 17일 ~ 1962년 2월 24일)는 타이완의 문학 연구자이며, 대학 교수 출신의 전직 반공주의 정치인이다.

후스
胡適
1960년 당시의 후스 교수
1960년 당시의 후스 교수
자유중화민국 타이완 외교부
동양국가국제외교행정위원
임기 1956년 9월 30일 ~ 1957년 1월 2일
대통령 장제스
신상정보
출생일 1891년 12월 17일(1891-12-17)
출생지 청나라 장쑤성 상하이
사망일 1962년 2월 24일(1962-02-24) (70세)
사망지 타이완 중화민국 타이완 타이베이
학력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
경력 중화민국 베이징 대학 교수
중국국민당 외교행정위원
중화민국 타이완 중앙연구원 원장
정당 무소속
별명 자(字)는 스즈(適之)
종교 유교(성리학)

생애편집

아명(兒名)은 후스먼(胡嗣穈, 호사문), 자(字)는 스즈(適之, 적지)이다. 1891년 장쑤 성 상하이에서 출생하였으며 1906년부터 3년간 상하이 중국 공학에서 대학 예과를 다녔다. 1909년 ~ 1910년 유미이업관에서 학업한 뒤 미국에 유학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여 1927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7년 앞서 귀국하여 베이징 대학 문과 교수로 있으면서 《신청년》에서 구어체 문학 운동을 폈으며 1918년 12월 천두슈, 리다자오가 창간한 《매주평론》(1919년 8월 폐간)의 후반기 편집에 참여하였다. 1922년 베이징 대학 문과 학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 《노력주보》를 창간하고, 1923년에는 《신청년》의 기반 위에서 량치차오장둥쑨 • 장쥔마이 일파를 공격하는 이른바 '과현논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상하이 쿠데타 이후로, 1927년 베이징 대학이 국립 베이핑 대학에 흡수된 뒤에는 차이위안페이와 함께 상하이로 떠났고, 1927년 상하이 광화 대학 교수, 1928년 ~ 1930년 중국 국민당에 흡수된 상하이 중국 공학의 학장을 지냈지만, 국민당의 독재에 반기를 드는 《독립 평론》 등에서 평론 활동을 펴는 한편, 문학 단체 '신월파'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1932년부터는 베이징 대학에서 문학원 원장을 지냈고, 베이징 대학을 떠난 뒤에는 1938년~1942년 중화민국 주미대사, 1946년에는 장제스난징 정부에 의해서 베이징 대학 교장에 취임하였으나, 1948년, 난징, 상하이를 거쳐서 1949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장제스의 정객이자, 제2차 국공내전의 전범의 하나로 지목되었으며, 중국 공산당 정권에서 그를 향한 대대적인 비판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반우파 운동이 한창이던 1958년에는 타이완으로 이주하였고, 중앙연구원 원장을 4년 간 역임하였다. 저작으로 《백화문학사》, 《후스 문존》, 《중국 철학사 대강》 등이 있다.

학력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