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쿠니 도시코
히가시쿠니 도시코(일본어: 東久邇 聡子, 1896년 5월 11일 ~ 1978년 3월 5일)는 일본의 구황족이다. 메이지 천황의 딸이며,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의 부인이다. 혼인 전의 이름은 야스노미야 도시코 내친왕(일본어: 泰宮聡子内親王), 혼인 후 평민 신분이 되기 전까지의 이름은 나루히코 왕비 도시코 내친왕(일본어: 稔彦王妃聡子内親王)[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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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
내친왕, 왕비 | |
이름 | |
휘 | 히가시쿠니 도시코 |
별호 | 야스노미야 도시코 내친왕 |
신상정보 | |
국적 | 일본 |
출생일 | 1896년 5월 11일 |
출생지 | 일본 제국 |
사망일 | 1978년 3월 5일 |
사망지 | 일본 |
부친 | 메이지 천황 |
모친 | 소노 사치코 |
배우자 |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 |
자녀 | 모리히로 왕 등 |
생애편집
1896년(메이지 29년) 5월 11일 메이지 천황과 후궁 소노 사치코의 딸로 태어났으며, 메이지 천황에게는 9번째 딸이다. 1915년(다이쇼 4년) 황족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과 혼인하고 훈1등 보관장을 수여받았다. 나루히코 왕이 육군 중장이 되었을 때 도시코는 육해군장교부인회의 회장을 지냈다. 이후 나루히코는 내각총리대신을 지내기도 했으나, 1947년(쇼와 22년) 대규모의 신적강하가 이루어질 때 평민의 신분이 되었다. 이때 도시코 역시 평민이 되었으며, 이름도 히가시쿠니 도시코로 바뀌었다.
평민이 된 이후에는 남편의 사업 실패 등으로 많은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8년(쇼와 53년) 3월 5일 향년 83세(만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2][3]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제122대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1852~1912, 재위:1867~1912)
- 어머니 : 소노 사치코(園祥子, 1867~1947)
- 시아버지 :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久邇宮朝彦親王, 1824~1891)
- 남편 : 히가시쿠니 나루히코(東久邇稔彦, 1887~1990)
사진편집
주해 및 각주편집
- 주해
- 각주
- ↑ 東久邇宮国際文化褒賞 TOP - 東久邇宮国際文化褒賞の由来 - 東久邇宮盛厚殿下について
- ↑ 《20世紀日本人名事典》〈東久邇 聡子〉항목
- ↑ 《デジタル版 日本人名大辞典+Plus》〈東久邇 聡子〉항목
- ↑ “■訃報■多羅間"殿下"亡くなる=皇籍離脱した明治天皇の孫”. 《ニッケイ新聞》. 2015년 4월 17일. 2017년 4월 27일에 확인함.
- ↑ 東久邇宮国際文化褒賞 TOP - 東久邇宮国際文化褒賞の由来 - 東久邇宮盛厚殿下について - 家系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