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독일 국가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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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독일 총선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11월 혁명의 결과로 수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제헌의회 총선으로, 최초로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으며, 여성들의 참정권이 인정되고 선거연령이 25세에서 20세로 낮아졌었다. 투표율은 83%를 기록했다.

독일
1919년 독일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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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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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의석: 423
과반의석: 212
투표율 83.0% (감소 1.9 pp)
  제1당 제2당 제3당
 
지도자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필리프 샤이데만
아돌프 그로버 프리드리히 폰 파이에르
정당 독일 사회민주당 독일 중앙당 독일 민주당
지도자 취임 1919년 1917년 1918년
획득한 의석수 165석 91석 75석
득표수 11,516,852 5,980,259 5,643,506
득표율 37.9% 19.7% 18.5%

  제4당 제5당 제6당
  style="text-align: center; border-bottom: 6px solid 독일 정당색 목록을 확인해 주세요"|
지도자 아르투르 폰 포사도프스키-베흐너 휴고 헤세 루돌프 하인츠
정당 독일 국가인민당 독립사회민주당 독일 인민당
지도자 취임 1919년 1917년 1919년
획득한 의석수 44석 22석 19석
득표수 3,121,541 2,319,235 1,345,712
득표율 10.3% 7.6% 4.4%


선거전 수상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독일 사회민주당

수상 당선자

필리프 샤이데만
독일 사회민주당

1919년 독일제국 총선
투표율 83%
 %
40
30
20
10
0
37.9%
19.7%
18.5%
10.2%
7.6%
4.4%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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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말 1918년 11월 9일 킬(Kiel) 군항에서 수병들이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11월 혁명이 일어났다. 결국 11월 9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망명하면서 제정이 무너졌고, 이와 함께 막스 폰 바덴 총리가 사임하면서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인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에게 임시정부 수립을 위촉했다. 에베르트는 사민당 뿐만 아닌 독립사회민주당에도 내각구성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독립사민당이 에베르트의 제안을 수락함으로써 11월 9일 당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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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득표수 % 의석수
1919년 1월 19일
독일 사회민주당 11,509,048 37.86 163
독일 중앙당 5,980,216 19.67 91
독일 민주당 5,641,825 18.56 75
독일 국가인민당 3,121,479 10.27 44
독립사회민주당 2,317,290 7.62 22
독일 인민당 1,345,638 4.43 19
바이에른 농민동맹 275,125 0.91 4
독일-하노버당 77,226 0.25 1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농민과 농민노동자 민주당 57,913 0.19 1
브라운슈바이크주 선거 협회 56,858 0.19 1
메클렌부르크 마을 동맹 10,891 0.04 0
독일 평화당 3,503 0.01 0
독일 공무원, 고용인, 중산층당 1,438 0.00 0
기독교사회당 664 0.00 0
중산층당 640 0.00 0
독일 사회 귀족 279 0.00 0
민주 중산층당 208 0.00 0
사회개혁당 45 0.00 0
기권/무효 124,562
합계 30,524,848 100 421
등록유권자/투표율 37,362,100 83.02
1919년 2월 2일 – 동부의 장병들 대표
독일 사회민주당 7,804 60.04 2
독립사회민주당 1,945 14.96 0
독일 민주당 1,681 12.93 0
무소속 명단 1,389 10.69 0
독일 인민당 74 0.57 0
독일 국가인민당 62 0.48 0
독일 중앙당 43 0.33 0
기권/무효 390
합계 13,388 100 2
출처: Nohlen & Stöver, Gonschior.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