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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연수(桂延壽, ? ~ 1920년)는 한국종교인이며 사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존 인물인지는 의심되고 있다. 자는 인경(仁卿), 호는 운초(雲樵), 세거선천(世居宣川), 일시당(一始堂)이라고 한다.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으로 이기의 문인(門人)이었으며 태백교도였다고 한다.[1]

생애편집

계연수의 생애는 크게 《환단고기》(桓檀古記) 및 태백교(太白敎)과 관련된 행적과 단군교(檀君敎)와 관련된 행적으로 나뉜다. 두 가지 행적은 서로 많은 면에서 다르며, 대치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 《환단고기》 및 태백교에 따르면, 계연수는 대한자강회 출신으로 이기의 문인이다. 1898년(무술년) 《단군세기(檀君世記)》와 《태백유사(太白遺史)》등의 책을 간행하였고, 이기가 1909년 단학회(檀學會)를 설립한 후 사망하자 뒤를 이어 단학회의 2대 회장이 되었다. 1911년에 《환단고기》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상룡의 막하에서 참획군정으로 공을 세우는 등 항일운동에 힘쓰다가 1920년에 만주에서 일제의 밀정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 단군교의 《단탁》,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 등에 따르면 계연수는 묘향산에서 수도를 하던 도인(道人)으로, 묘향산의 석굴에서 수도를 하던 도중 깨달음을 얻자 갑자기 벽에 새겨진 천부경이 보여 이를 탁본하였다고 한다.(1916년) 1917년에는 이 탁본을 단군교에 보내 해석을 구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행적에 대한 의문편집

  • 대한민국에 있는 계씨는 수안 계씨 뿐인데 수안 계씨의 족보에는 계연수라는 이름이 없다.[2]
  • "1911년에 여러 사서들을 엮어 이기(李沂)의 감수를 받아 《환단고기》를 간행하였다"는 내용은 위서로 알려져 있는 《환단고기》 외에는 확인되지 않는다.
  • 계연수는 이상룡의 막하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큰 전공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룡과 관련된 기록 및 이상룡의 문집에는 계연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으며[3], 환단고기 및 태백교의 전승을 제외하면 계연수의 독립운동 기록이 없다.[4]

민족 의식에 대한 의문편집

계연수는 《환단고기》의 저자이자 단군교에 천부경을 전한 민족주의자 또는 항일운동가로 인식되어 있으나 실제 그의 행적이나 저작 속에서는 다음과 같이 민족 의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환단고기》에는 계연수가 직접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범례가 있는데, 1911년에 작성되었다고 하는 이 범례는 당시의 민족주의자가 서술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5] 또한 《환단고기》의 주요 내용들에서 친일성이 지적된다, 《환단고기》는 위작으로 의심되므로 해당 내용들 역시 계연수의 저작으로 보는 주장이 존재한다.[5] 한편 단군교와 관련되어 친일성이 지적된다. 단군교는 원래 대종교와 같은 교단이었으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나철이 대종교로 교명을 고치고 만주로 망명하자 정훈모 등이 이에 반발하여 단군교의 이름을 고수하며 국내에 남았다. 이 단군교에 대해 친일성을 제기하는 연구가 존재한다.[6]

각주편집

  1. 단단학회편(이유립), 《환단고기》, 광오이해사, 1979년
  2. “「추적!환단고기 열풍」- 역사스페셜, KBS, 1999.10.2.”. 2007년 4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10월 8일에 확인함. 
  3. 이상룡, 《석주유고》, 고려대학교, 1973 / 이상룡, 《석주유고 후집》, 석주이상룡기념사업회, 1996
  4. 《독립운동사》,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5. 박광용, 〈역비논단 대종교 관련 문헌에 위작 많다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의 성격에 대한 재검토〉, 《역사비평》 12호, 역사비평사, 1990
  6. 삿사 미츠아키, 〈한말·일제시대 단군신앙운동의 전개 : 대종교·단군교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 천부경#비판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문헌 및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