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
김서규(金瑞圭, 1875년 음력 11월 10일 ~ 1935년 양력 8월 17일)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다.
생애
편집대한제국 말기에 외부에서 관리로 이력을 시작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에 조선총독부 소속으로 승진을 거듭하며 군수와 도 참여관, 도지사를 지냈고, 사망하기 4개월 전인 1935년 4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도 임명되었다.
3·1 운동 때 안변군수로서 관할 지역 시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탄압하여 한 명의 불령선인도 나오지 않게 한 공을 인정받았고, 이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김서규에게 현상금을 건 일이 있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는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1][2]
관직 활동 외에 1930년 사회정화단체이며 일본 수양단의 조선지부 성격이던 수양단조선연합회본부 평의원, 1933년 조선신궁 설치 1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결성된 조선신궁봉찬회 경북지부장, 1934년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전쟁에 대비해 조직된 관제 단체 경북국방의회연합회 회장을 지낸 바 있다. 1925년에 한일 병합 15주년을 기념해 천황과 총독부의 높은 덕을 칭송하는 장문의 한시를 지어 《조선》에 게재하는 등 친일 기고문도 남아 있다.
약력
편집대한제국 시기
편집- 1902년 : 외부 견습생
- 1903년 : 외부 주사
- 1904년 : 경상남도 동래·옥구·창원감리서 주사
- 1906년 : 창원부 주사, 함경북도 성진부 참서관 및 성진항재판소 검사
- 1908년 : 함경북도 도사무관
일제 강점기
편집- 1911년 ~ 1912년 : 함경북도 영흥군 군수
- 1912년 ~ 1922년 : 함경남도 안변군 군수
- 1918년 : 함경남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위원
- 1922년 ~ 1927년 : 함경북도 참여관
- 1927년 ~ 1929년 : 평안남도 참여관
- 1929년 : 전라남도 지사
- 1929년 ~ 1931년 : 전라북도 지사
- 1931년 ~ 1935년 : 경상북도 지사
- 1935년 :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훈포장 서훈 내역
편집사후
편집- 2002년 : 친일파 708인 명단 3개 부문 수록 - 중추원, 도지사, 도 참여관
- 2007년 :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 관료 부문 수록
- 2008년 :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김서규 소유의 토지 국가귀속 결정[3]
- 2008년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개 부문 수록 - 중추원, 관료
가족 관계
편집같이 보기
편집참고자료
편집-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7년 12월). 〈김서규〉 (PDF). 《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서울. 944~957쪽쪽. 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전임 석진형 |
제5대 전라남도 도지사 1929년 1월 19일 ~ 1929년 12월 11일 |
후임 우마노 세이치 |
전임 하야시 시게키 |
제6대 전라북도 도지사 1929년 12월 11일 ~ 1931년 9월 23일[4] |
후임 홍승균 |
각주
편집- ↑ 성강현 (2004년 3월 18일).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일요시사. 2008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6일에 확인함.
- ↑ 성강현 (2004년 3월 18일). “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일요시사. 2008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6일에 확인함.
- ↑ 신재우 (2008년 2월 28일). “김서규 등 친일파 7명 재산 41억 국가귀속”. 연합뉴스. 2008년 5월 16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조선총독부 관보, 1929년 12월 18일, 1931년 9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