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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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왕(宣德王, ? ~ 785년, 재위: 780년 ~ 785년)은 신라의 제37대 이다. 성은 (金)이고, 는 양상(良相)이다. 내물 마립간의 10대손이라 하나 가계는 다소 불분명하다. 아버지는 해찬 효방(孝芳)이고, 할아버지는 김원훈(金元訓)이다. 어머니는 성덕왕의 딸인 사소부인(四炤夫人)이다. 선왕 혜공왕은 그의 외사촌형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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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왕
新羅 宣德王
지위
신라의 제37대 국왕
재위 780년 ~ 785년
전임 혜공왕(惠恭王)
후임 원성왕(元聖王)
부왕 김효방(金孝芳)
이름
김양상(金良相)
묘호 없음
시호 선덕(宣德)
신상정보
부친 김효방(金孝芳)
모친 사소부인(四炤夫人)
배우자 구족부인(具足夫人)
종교 불교

그밖에도 삼국사기 선덕왕조 5년과 7년에는 그가 원성왕 김경신과 형제뻘이라는 설도 있어서 가계가 불분명하다.

생애편집

신라 김씨 족보에 의하면 증조부는 사다함이고, 할아버지는 원훈이며, 아버지는 효양이라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나타나지 않는 내용이며, 사다함은 선덕왕보다 2백 년 이전에 활동하던 인물이라 증조부-증손자로 보기에는 연대 차이가 길다. 어머니는 성덕왕의 딸로, 혜공왕에게는 고종사촌, 혜공왕은 그의 외사촌간이 된다.

경덕왕 23년(764년) 아찬(阿飡)을 거쳐 혜공왕 10년(774년) 상대등이 되었다. 선덕왕 1년(780년) 혜공왕과 일족이 김지정에게 피살되자 김경신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김지정을 살해하였다.

반면, 삼국유사에 따르면 혜공왕은 김양상, 김경신에게 살해되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김지정의 난은 당시 실권을 장악한 상대등 김양상, 이찬 김경신을 겨냥했다는 학계의 일부 해석이 있다.

경덕왕 때 관제 개혁이 있었는데, 혜공왕 때 상대등 김양상, 이찬 김경신등의 대신들의 주도로 관제 개혁을 모두 취소하였다.

김양상은 자신의 아버지 개성왕으로 추증하여 사당을 만들고, 외조부 성덕왕의 사당도 만들었다. 후에 원성왕 김경신에 의하여 모두 허물어 졌다. 선덕왕 5년조와 7년조에는 김경신과 형제뻘이라 하나, 그가 김양상의 친형제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이는 원성왕조에 보면 원성왕 즉위 후 선덕왕의 할아버지 원훈의 사당을 폐쇄하였기 때문이다.

선덕왕도 후사 없는 가운데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하고 사망하여 내물왕의 후손 김경신과 무열왕의 차남 김인문의 7대손 김주원 사이에 왕위 계승을 놓고 갈등이 생기는 원인이 되었다.

785년 1월 병으로 붕어하였다. 자녀와 후손 여부는 기록되지 않아 알 수 없다. 시신은 유언에 따라 화장하였다.

가계편집

  • 조부 : 김원훈(金元訓)
    • 아버지 : 김효방(金孝芳) 해찬(海飡)으로 개성왕(開聖王)에 추봉
  • 외조부 : 성덕왕 - 신라 제33대 왕
  • 외조모 : 성정왕후(成貞王后)
    • 어머니 : 사소부인(四炤夫人, 성덕왕의 딸)
    • 계모 : 정의부인 박씨(貞毅夫人 朴氏)
      • 왕비 : 구족왕후 김씨, 각간(角干) 양품(良品)의 딸

참고편집

전 대
혜공왕
제37대 신라 국왕
780년 - 785년
후 대
원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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