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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섭(金長涉, 일본식 이름: 金山長涉 또는 金山博信, 1910년 8월 17일 ~ 1993년 12월 21일[1], 경북 포항)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법조인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목차

생애편집

일본에 유학하여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40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법조계에 들어섰다. 일제 강점기 동안 광주지방법원 검사, 신의주지방법원 판사 등을 지냈다.

미군정 하에서 그대로 검사로 임용되어 대구고등법원 검사를 거쳐 대구고등법원 부장검사, 부산지방검찰청 진주지청에 올랐다. 1953년에는 대한민국 법무부 검찰국장 겸 대검찰청 이사관이 되었고, 1954년에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에 임명되었다. 대검찰청 검사를 거쳐 변호사를 개업했다.

제1공화국 말기에 내무부와 농림부에서 차관을 지냈으며, 김익노의 당선무효로 치러진 1960년대한민국 제4대 총선 보궐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고향인 영일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무소속으로 한 차례,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두 차례 더 당선되어 4선 의원을 역임했다.

한일협회 회장과 대한민국 제7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대한민국건국십년지》에는 국회 내의 법이론가로 통한다는 인물평이 적혀 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1·23 재보궐선거 국회의원(경북 영일군 을) 4대 자유당     70.0% 29,403표 1위  
제6대 총선 국회의원(경북 포항시·영일군·울릉군) 6대 민주공화당       49.05% 44,363표 1위  
제7대 총선 국회의원(경북 포항시·영일군·울릉군) 7대 민주공화당     43.86% 47,868표 1위  

각주편집

  1. “전국회의원 김장섭씨”. 조선일보. 1993년 12월 23일. 30면면. 

외부 링크편집

전임
우만형
제17대 내무부 차관
1958년 9월 1일 ~ 1959년 3월 25일
후임
이성우
전임
김병윤
제14대 농림부 차관
1959년 4월 10일 ~ 1959년 12월 21일
후임
박도언
  전 임
(영일군 갑)박순석
(영일군 을)김익노
제4대 민의원(영일군 을)
1960년 1월 24일 ~ 1960년 7월 28일
(보궐선거)
자유당
(영일군 갑)박순석
후 임
(영일군 갑)최태능
(영일군 을)최해용
 
  전 임
(신설)
제5대 참의원(경상북도 제2부)
1960년 7월 29일 - 1961년 5월 16일
무소속
이원만, 권동철, 최달희
후 임
(폐지)
 
  전 임
(포항시)이상면
(영일군 갑)최태능
(영일군 을)최해용
(울릉군)전석봉
제6대 국회의원(포항시·영일군·울릉군)
1963년 12월 17일 ~ 1967년 6월 30일
민주공화당
후 임
(포항시·영일군·울릉군)김장섭
 
  전 임
김장섭
제7대 국회의원(포항시·영일군·울릉군)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민주공화당
후 임
(포항시·울릉군)김병윤
(영일군)정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