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1949년)
김태영(金泰榮, 1949년 1월 13일~)은 대한민국의 제34대 합동참모의장을 지낸 군인으로 제42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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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7일 | |
대한민국의 제42대 국방부 장관 | |
임기 | 2009년 9월 23일~2010년 12월 4일 |
전임 | 이상희 |
후임 | 김관진 |
대통령 | 이명박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49년 1월 13일 | (75세)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
경력 | 한나라당 당무위원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겸 당무위원 미래통합당 당무위원 국민의힘 고문 겸 당무위원 |
정당 | 국민의힘 |
종교 | 불교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복무기간 | 1973년~2009년 9월 23일 |
최종계급 | 대장 |
지휘 | 육군 제8사단 포병연대 육군 제6군단 포병여단 육군 제23사단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 합동참모본부 |
주요 경력
편집- 1973년 3월 30일, 육군 소위 임관
- 1984년~1989년 15사단 26포병대대장
- 1989년~1991년 합참의장 보좌관
- 1991년~1993년 8사단 포병연대장
- 1993년~1995년 56사단 참모장
- 1995년~1996년 합참 전략기획참모부 전쟁기획과장
- 1996년~1997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방담당관
- 1997년~1998년 제6군단 포병여단장
- 1998년~2000년 국방부장관 보좌관
- 2000년~2002년 보병 제23사단 사단장
- 2002년~2003년 육본 기획관리참모부장
- 2003년~2004년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 2004년~2005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 2005년~2006년 합참 작전본부장
- 2006년 11월 16일, 육군 대장 진급
- 2006년 11월 17일~2008년 3월 21일: 육군 제1야전군사령관
- 2008년 3월 28일~2009년 9월 23일: 합참 합동참모의장
- 2009년 9월 23일, 육군 대장 전역
- 2009년 9월 23일~2010년 12월 3일: 제42대 국방부 장관
- 2009년 9월 30일~2010년 1월 31일 한나라당 당무위원
- 2010년~2016년 국방부 한민학원 이사장
- 2012년~: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
- 2014년 3월~2015년 2월: 아주대학교 대학원 네트워크 중심전 학과 초빙교수
- 2016년 2월~2022년 1월: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
- 2016년 2월~: 군인자녀교육진흥원 이사장
- 2017년 3월~2019년 3월: KAI 사외이사
- 자유한국당 전임고문
- 엄홍길휴먼재단 고문
- 한국군사학회 고문
학력
편집상훈
편집- 2009년 보국훈장 통일장
- 2001년 보국훈장 천수장
평가
편집국방부 장관으로 재임하기 전인 2009년 9월 18일에 이루어진 청문회에서 철저한 청렴성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육군 대장까지 오르는 약 30여년의 군생활 동안 모은 재산은 약 7억 정도에 불과했고, 은퇴 후 돌아갈 집이 재산의 거의 전부였다. 또한 아들은 육군 병장으로 제대시켰고, 2008년 딸의 결혼식 때는 비용을 신용카드로 지불하는 등 자기관리가 철저해 여·야 가리지 않고 장관 임명에 동의하였다.[1]
비판
편집국방장관 재임 기간 중 벌어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에 대한 적절치 못한 대응으로 비판을 받고 2010년 12월, 국방장관 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2][3][4] 한편 2010년 3월에는 제주해군기지 조성으로 갈등 상황에 있는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 지역 반대대책위원회 관계자와의 간담 중 훌륭한 관광지는 인공조형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피력하면서 "아프리카 밀림은 관광지가 아닌 무식한 흑인들이 뛰어다니는 곳일 뿐"이라는 인종 차별 발언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5][6] 2013년 12월 5일에는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 축하연에 참가하여 논란을 일으켰다.[7]
김태영 전 장관은 대한민국-아랍에미리트 외교 갈등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의 하나로 주목받았는데, 2018년 1월 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유사시 한국군 자동개입이 포함된 비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털어놨다.[8] 이는 헌법상 국회동의를 요하는 중대사안이고 헌법질서에 따라 진행돼야 할 사안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비공개로 진행한 것이었으며, 또한 유승민의원이 2010년 11월 1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UAE가 공격을 당했을 때 군사적으로 도움을 준다든지 파병한다고 약속했다면 헌법(위반)의 문제"라며 8차례나 질의했지만 김태영 전 장관은 끝까지 부인했다.[9] 그런데 김태영 전 장관은 "(UAE에 군사지원을 약속했지만) 실제론 국회의 비준이 없으면 군사개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처음부터 지키지 않을 약속을 했다는 뜻이며 UAE에 국제 사기를 쳤다는 얘기밖에 안된다는 비판이 있었다.[9]
가족 관계
편집- 부인: 이범숙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김태영, 의혹 없어 꿋꿋…질책보다 찬사, 한국경제, 2009년 9월 19일 작성.
- ↑ (北, 연평도 포격 도발) 김태영 국방 전격 경질
- ↑ 청와대는 왜 김태영을 경질했나?
- ↑ '불명예 퇴진' 김태영 국방장관..사퇴 배경은
- ↑ 김태영 국방장관 "무식한 흑인" 발언 논란 일 듯
- ↑ 김태영 국방 “아프리카는 무식한 흑인만 뛰어다녀”
- ↑ 서울 한복판에서 日王 생일파티..철통경비에 취재방해까지
- ↑ 단독, 김태영 "UAE와 군사협약 내가 책임지고 비공개 하자 했다" - 중앙일보
- ↑ 가 나 UAE 상대로 국제 사기극 벌인 김태영 전 국방 - 경향신문
외부 링크
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김태영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전임 김선규 |
제9대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2003년 10월 ~ 2004년 5월 26일 |
후임 김국헌 |
전임 이상태 |
제24대 수도방위사령관 2004년 5월 27일 ~ 2005년 5월 2일 |
후임 이영계 |
전임 김병관 |
제33대 제1야전군사령관 2006년 11월 17일~2008년 3월 21일 |
후임 김근태 |
전임 김관진 |
제34대 합동참모의장 2008년 3월 28일~2009년 9월 23일 |
후임 이상의 |
전임 이상희 |
제42대 국방부 장관 2009년 9월 23일~2010년 12월 3일 |
후임 김관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