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찬(南宮璨)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여헌(汝獻), 호는 창랑(滄浪)이다. 벼슬은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렀다.

생애 편집

함열 남궁씨 중시조 남궁득희(南宮得禧)의 9세손이다.

1477년(성종 8)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1]

1489년(성종 20)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보임되었다. 1493년(성종 24) 이조 좌랑(吏曹佐郞)을 역임하고,[2] 1495년(연산군 1)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과[3]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를 역임하였다.[4]

1497년(연산군 3) 문신(文臣)의 정시(庭試)에서 수석을 차지했다.[5] 같은 해 12월에는 향표리를 하사받았고, 1498년 홍문관부응교가 되었다.

1499년 봉정대부(奉正大夫)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지제교(知製敎) 겸 승문원 교감(承文院校勘)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6]

1500년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제주 목사(濟州牧使)에 부임하였고, 1504년(연산군 10) 강원도감사(江原道監司)가 되었다.[7]

묘는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목사동길 48에 있다.

가족 편집

  • 증조부 : 남궁좌(南宮佐)
    • 조부 : 군수 남궁치(南宮致)
      • 아버지 : 생원 남궁순(南宮順)
      • 어머니 : 감찰 최돈(崔敦)의 딸

문화재 편집

각주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