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목동
대한민국 울산광역시 동구의 행정동인 남목1동·남목2동·남목3동의 통칭
남목동(南牧洞)은 울산광역시 동구의 행정동인 남목1동·남목2동·남목3동의 통칭이다.
남목1동 南牧1洞 | |
---|---|
Nammok 1(il)-dong | |
![]() | |
면적 | 4.99 km2 |
인구 (2014.11.30.) | 11,231 명 |
인구 밀도 | 2,250 명/km2 |
세대 | 4,138가구 |
법정동 | 동부동, 서부동 |
통·리·반 | 16통 101반 |
동주민센터 |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진순환도로 1170 |
웹사이트 | 남목1동 주민센터 |
남목2동 南牧2洞 | |
---|---|
Nammok 2(i)-dong | |
면적 | 4.37 km2 |
인구 (2014.11.30.) | 25,960 명 |
인구 밀도 | 5,940 명/km2 |
세대 | 9,240가구 |
법정동 | 서부동 |
통·리·반 | 32통 219반 |
동주민센터 | 울산광역시 동구 명덕6길 33 |
웹사이트 | 남목2동 주민센터 |
남목3동 南牧3洞 | |
---|---|
Nammok 3(sam)-dong | |
면적 | 8.59 km2 |
인구 (2014.11.30.) | 14,617 명 |
인구 밀도 | 1,700 명/km2 |
세대 | 5,110가구 |
법정동 | 주전동, 동부동 |
통·리·반 | 18통 125반 |
동주민센터 | 울산광역시 동구 동해안로 100 |
웹사이트 | 남목3동 주민센터 |
지명편집
서부동, 동부동은 앞불내(南木川)라는 이름으로 이미 조선시대 초기부터 등장하며, 1469년 조선 예종 1년에는 적진리(赤津里)라 하였다. 그 후 정조 때는 남옥리(南玉里)와 한채리로 갈라졌다.그 후 1894년 고종 31년에는 옥류천 동쪽을 동부동, 그 서쪽을 서부동이라 하였다. 한편 한채리는 대편동(大便洞)으로 고쳤다가 다시 대편동(大片洞)이라 하였다. 일제시대인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서부동과 대편동을 합쳐서 서부리라 하였다. 이곳은 울산 목장의 감목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동부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전까지 동구 지역에서 가장 중심지였다. 주전동은 조선 정조 때 주전리와 주전해리(朱田海里) 두 개의 동으로 되어 있다가, 1894년 고종 31년에 주전동이 되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인 1911년까지도 계속 주전동이라 하다가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다시 주전리가 되었다. ‘주전’(朱田)이란 ‘땅의 색깔이 붉다’는 뜻인데, 실제로 이 마을 대부분의 땅 색깔은 붉은색을 띠고 있다.[1]
연혁편집
법정동편집
- 서부동(西部洞)
- 동부동(東部洞)
- 주전동(朱田洞)
- 미포동(尾浦洞)
교육편집
1동편집
2동편집
3동편집
동부동편집
주거편집
- 아파트
- 신영건설 / GS건설 울산 지웰시티 자이 (서부동) : 2023년 5월 입주예정.
기업편집
기관편집
- 법원 중부 등기소
- 남목우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