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공화국

베트남 이남에 존재했던 옛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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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공화국(베트남어: Việt Nam Cộng Hòa비엣남 꽁호아?) 또는 남베트남1955년 10월 26일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북위 17도 베트남 군사분계선 이남에 존재했던 나라이다. 군사분계선 이북의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과 대치하였다.

베트남 공화국
Việt Nam Cộng Hòa

1955년 ~ 1975년
 

표어Tổ quốc - Danh dự - Trách nhiệm (1954 - 1967)
조국, 명예, 책임
Tổ quốc - Công minh - Liêm chính (1967 - 1975)
조국, 공정, 청렴
국가청년행진곡
South Vietnam in its region.svg
수도사이공 10°46′10.56″N,106°41′7.8″E
정치
정부 형태공화제
총통
1955-63
1965-75

응오딘지엠
응우옌반티에우
역사
 • 정권 교체
사이공 함락
냉전
1955년 10월 26일
1975년 4월 30일
지리
1955년 어림 면적173,809 (67,108 sq mi)
인문
공용어베트남어
인구
1955년 어림12,000,000명
인구 밀도-69/km2 (178.8/sq mi)
-111.4/km2 (288.6/sq mi)
경제
통화 (dong)
남베트남의 지도

베트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종결되면서 프랑스비엣민의 휴전으로 1954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분단되었는데, 베트남 공화국의 전신인 베트남국(1949년 6월 14일 - 1955년 10월 26일)을 남베트남의 역사에 포함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진영에선 정치이념에 따라 북베트남과의 구분을 위해 자유 월남, 자유 베트남 등으로도 불렸다.

국명의 변동편집

역사편집

베트남국편집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다른 지역(안남, 통킹, 캄보디아, 라오스)이 보호령이었던 데 반해 베트남 남부 코친차이나는 사이공을 수도로 하는 식민지 지위에 놓여 있었다. 1862년 프랑스에 합병된 후, 프랑스 국회에 보낼 대표자 선거가 치러지기도 했다. 따라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다른 지역에 비해 프랑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중에 프랑스는 코친차이나를 베트남의 다른 지역과 독립된 지위를 유지하여 속칭 "인도차이나 연방" 내의 독립국으로 유지하려 했으나 비엣민은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오다이 정권편집

베트남국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중인 1949년 6월 14일, 반공주의 베트남인과 프랑스 정부에 의해서 세워져 국가 원수로 전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다이가 취임했다. 프랑스는 베트남국에 부분적인 자치권을 주었다. 그러나 호찌민이 이끄는 비엣민은 이를 거부하고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을 얻을 때까지 투쟁하였다.

1954년 제네바 협정에 의해 베트남국은 북위 17도 이남을 잠정적으로 통치하고, 선거를 통해 통일 정부를 수립하도록 결정되었다. 그러나 선거와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베트남의 분단이 결정되자 주로 가톨릭을 믿는 약 80만-100만 명의 베트남인들이 공산주의자들로의 박해를 피해 북베트남에서 남베트남으로 이주하였다. 1955년 10월 26일, 응오딘지엠이 "베트남 공화국" 수립을 선언하고 바오다이 황제를 폐위시켰다.

베트남 공화국편집

베트남 공화국은 1955년 10월에 남베트남에 수립된 나라로, 초대 대통령은 응오딘지엠이었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에 의해 붕괴될 때까지 존속했다. 베트남 국민들의 주 종교인 불교를 탄압하여 불교도와의 관계도 매우 좋지 않았고 국가 내부의 부정부패도 심했으며 국민들의 불만은 계속 커져갔다. 때문에 지리적으로 유리한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남베트남의 모든 기관들이 부정부패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여 혼란에 빠진 사회에 북베트남의 간첩들이 침투하기 아주 쉬웠다. 북베트남의 간첩들은 모두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 정부의 부당함을 선동하여 남베트남 사회를 극심한 혼란에 빠트리는데 성공한다. 당시 남베트남의 사회는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 였으며 군부 쿠데타도 자주 발생하였고 국가의 정통성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혼란한 남베트남 내에서 좌파 반군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조직되어 테러와 남베트남군(극심하게 부패한 남베트남군이 제대로 된 전투도 불가능했기에 비교적 상대하기가 쉬웠다고 한다)과의 게릴라전을 벌여 국가의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미군이 투입되었지만 끝내 물거품이 되었으며 미국내에서도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이 증가하였고 결국 미국은 부패한 남베트남을 지킬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남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드디어 1975년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구정 대공세가 시작되었고 미군도 철수 하면서 남베트남에게 장비들을 주고 떠났지만 장비들을 유지할 수 있는 자원과 금전적 지원은 주지 않았다.(그래서 패망 후 미군의 장비들은 공산통일이 된 베트남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이 함락되고 대통령궁에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국기가 게양됨에 따라 종말을 고했다.

남베트남의 지도자 목록편집

베트남국의 국가 원수편집

베트남 공화국의 국가 원수편집

같이 읽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베트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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