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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영어: Great Depression)은 1928년에 일부 국가에서 야기된 경제공황이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 대폭락, 즉 ‘검은 목요일’로 촉발되어 전 세계로 확대된 경제공황을 뜻한다. 대공황의 시기는 나라마다 달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1929년에 시작되어 193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20세기의 가장 길고, 깊고, 널리 퍼진 공황이었다.

대공황은 1929년 9월 4일경에 시작된 주가의 큰 하락 이후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1929년 10월 29일(블랙 화요일로 알려져 있음)의 주가 폭락으로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1929년과 1932년 사이에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약 15% 하락했다. 이에 비해 전 세계 GDP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1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일부 경제는 1930년대 중반부터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대공황의 부정적인 영향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공황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모두에서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개인 소득, 세수, 이익 및 가격은 하락했고, 국제 무역은 50% 이상 급락했다. 미국의 실업률은 25%로, 어떤 나라에서는 33%까지 상승했다.

전세계의 도시들, 특히 중공업에 의존하는 도시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많은 나라에서 공사가 사실상 중단되었다. 농작물 가격이 약 60% 하락하면서 농촌과 농촌은 피해를 보았다. 대체 일자리가 거의 없는 수요 급락에 직면한 채 광업과 벌목과 같은 1차산업에 의존하는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목차

원인편집

대공황에 대한 원인 분석에 대해서는 케인즈학파통화주의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대공황의 원인이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보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수요를 창출하면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통화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안나 슈왈츠는 "케인즈의 주장처럼 수요의 붕괴에 따라 촉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포에 질린 예금자들이 예금을 갑작스럽게 인출하자 은행들이 도산하면서 은행잔고와 준비금이 동이 난 직접적인 결과"라며 통화공급의 붕괴를 대공황의 원인으로 보았다.[1]

영향편집

몇몇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며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생각하고 소련을 여행한 경험을 글로 쓰기도 하였다..[2] 기술의 발전을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보았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의 혁신이 정체되어 더이상 발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붕괴할 것이며 사회주의가 도래한다고 주장했다.[3]

실업자의 증가와 중산층의 몰락은 정치적 극단주의를 도래하였다.[4] 일본에서는 1931년 하마구치 내각이 실각하면서 입헌 민주주의의 종언과 만주 침략을 알리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유럽에선 파시즘이 등장하는 데 영향을 줬다.[2] 독일에서는 디플레이션 정책으로 인해 불과 2년 사이 실업자수가 2배에 달하는 600만 명에 도달하면서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4] 심지어 영국과 미국에서도 파시스트 운동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나, 영국에서는 1931년 국민 정부가 성립되며 민주주의를 수호하였고, 미국에서는 1932년 대선에서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른바 '뉴딜 정책'을 실시하며 경제 회복을 꾀하였다.[4]

각주편집

  1. 누리엘 루비니, 스티븐 미흠 (2010). 허익준 옮김, 편집. 《위기 경제학》. 청림출판. 84-87쪽. ISBN 978-89-352-0836-4. 
  2. 윤석범. 《새거시경제학》. 123p쪽. 
  3. 민경국 (2014년 2월 14일). 《경제사상사》. 21세기북스. 205-206p쪽. ISBN 8950954427. 
  4. 지오프리 파커 (2004). 《아틀라스 세계사》 2판. 사계절. 146-147쪽.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