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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산문, 도굴산파, 사굴산문(闍崛山門) 또는 사굴산파(闍崛山派)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성립된 선종 구산의 하나이다.[1][2] 범일(梵日)국사가 문성왕 8년(846)에 개산하였으며 9산 중에 가장 번창하였다. 그 옛자리는 현재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있다.[3]

개산조 범일은 품일(品日)이라고 하며 양산사(陽山寺) 지증비(智證碑)에는 고산일(孤山日)이라고 되어 있다.[3] 속성은 김씨이며 구림인(鳩林人)이다.[3] 헌덕왕 2년(810)에 출생하여 15세에 출가, 입당하여 염관제안에 사법하여 문성왕 8년(846)에 귀국하였다.[3] 그 뒤 계속 굴산사에 주석하여 경문왕 · 헌강왕 · 정강왕의 3왕으로부터 존숭을 받았다.[3]

범일의 문하에 개청(開淸) · 행적(行寂) 등 소위 10대 제자들이 사굴산파를 선양하였다.[3] 개청의 제자는 신경(神鏡) · 총정 · 월효 · 환언(奐言) · 혜여(惠如) · 명연(明然) · 홍림(弘琳) 등 수백인이 문풍을 유지 상승하였다.[3] 사굴산 행적의 문하에도 신종(信宗) · 주해(周解) · 임엄(林儼) · 양경(讓景) 등 500여 명의 제자가 종파를 전승하였다.[3] 양경은 신라 헌강왕의 외숙으로, 그는 행적의 뒤를 이어 건성원(乾聖院)에 종풍을 선양하였다.[3]양경이 태백산에 백월비(白月碑)를 세운 지 160년이 지난 뒤 굴산문에 유명한 종장이 나왔는데 광명사(廣明寺)에 있었던 혜조이다.[3]

혜조는 입송(入宋)하여 정인(淨因)선사에 법을 얻어 귀국하여 사굴산 종풍을 빛내다가 순천 계족산정혜사(定慧寺)를 세웠다.[3] 문하에 지인(之印) · 탄연(坦然) · 영보(英甫) · 이자현(李資玄) 등 수백인의 명승이 나와 사굴산을 빛낸다.[3] 특히 불일보조(佛日普照)가 사굴산파에서 나와 조계 9산의 중흥조가 되었다.[3]

보조팔공산 정혜사(定慧社)를 신종(神宗) 3년(1200)에 송광산 길상사(吉祥寺)로 옮겼으며, 희종(熙宗) 원년(1205) 송광사의 중창공사가 이룩되어 120일간의 경찬법회를 베풀고 희종의 명에 의하여 송광산 정혜사조계산 수선사(曹溪山修禪社)로 개칭되어 조계종 굴산파의 제2 본산이 되었다.[3]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