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림산문(鳳林山門) 또는 봉림산파(鳳林山派)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성립된 선종 구산의 하나이다.[1][2]

봉림사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다.[3] 신라 효공(孝恭)왕 때 개산하였다.[3] 개산조 현욱(玄昱, 혹은 玄育 · 玄旭이라 한다)은 입당구법하여 마조의 제자 장경회휘(章敬懷揮)로부터 심법(心法)을 받아 귀국하였다.[3] 처음에는 광주(廣州)에 있는 혜목산(惠目山) 고달원(高達院)에 주하면서 선풍을 대자(大慈)하였다.[3] 또한 현욱민애 · 신무 · 헌안 · 경문 등 역대왕의 귀의를 받고 크게 종풍을 떨치다가 경문왕 10년(870)에 82세로 세상을 떠났다.[3]

현욱의 제자 중 심희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봉림산사(鳳林山寺)를 창건하여 종풍을 빛내니 봉림산파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3] 심희는 혜목산에서 수선하는 현욱을 찾아 득도하고 계승전법한 것이다.[3]

심희의 제자에 경질(景質) · 융제(融諦) 등 500여 인이 있었는데, 융제는 심희에게 사법(嗣法))한 이후 달성군 팔공산 삼랑사(三朗寺)에 주하면서 봉림산의 종풍을 날렸으며, 융제의 제자 찬유(璨幽)는 경문왕 9년(869)에 출생하여 13세에 출가하고 22세에 구족계를 받았다.[3] 진성여왕 5년(891)에 입당하여 석두(石頭)의 법손 대동투자(大同投子)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아가지고 귀국하여 고려 태조의 숭앙을 받아 봉림파를 튼튼히 하였다.[3]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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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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