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신문(每日新聞)는 대한민국 대구광역시를 근거지로 하는 지방 조간신문으로,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한다. 사장은 이상택 신부가 맡고 있다. 2015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석간 신문에서 조간 신문으로 전환되었다. 매일신문사 사옥 내에 대구가톨릭평화방송이 있다.주재지역은 서울, 김천, 의성 등 33곳이며 2실 5국 1본부 1지사 40부팀 지역본부의 조직에 283명이 종사하고 있다. 국내보급망으로 310개 지국이 있다. 본사는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20에 있다.
창간 | 1946년 3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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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한국어 |
본사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20 |
웹사이트 | http://news.imaeil.com/ |
발자취편집
- 1946년 3월 1일 남선경제신문을 제호로 대구시 대안동(태평로 7가)에서 창간하였다.
- 1950년 8월 1일 대구매일신문으로 제호를 개칭하였다.
- 1950년 10월 1일 천주교 대구대교구유지재단에서 인수하였다.
- 1955년 9월 14일 주필 최석채가 쓴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가 문제가 되어 자유당 간부 등이 신문사 및 사원을 테러한 '대구매일피습사건'이 있었다. 최석채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 1958년 12월 7일 사옥을 대구시 남일동 138번지로 이전하였다.
- 1960년 2월 28일 4·19 혁명을 유발시킨 2·28 대구 학생의거의 선봉이 되었다.
- 1960년 7월 7일 매일신문으로 제호를 개칭하였다.
- 1963년 3월 19일 무사설로 군정 연장을 반대하였다.
- 1964년 8월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과 함께 '언론윤리위원회법'을 반대하여 그 시행을 보류시키는데 앞장섰다.
- 1965년 12월 18일 간첩의 것으로 의심되는 물품을 보도하였다. 편집국장 등이 반공법 위반 혐의를 받았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 1979년 7월 25일 제1회 대붕기쟁탈 전국고교야구대회를 개최하였다.
- 1980년 11월 30일 지방지 '1도 1사'를 원칙으로 한 정부의 언론기관통폐합조치로 영남일보를 인수하였다.
- 1980년 12월 1일 대구매일신문으로 제호를 개칭하였다.
- 1981년 11월 14일 사옥을 현재의 대구 중구 계산동2가 71번지로 이전하였다.
- 1988년 3월 1일 매일신문으로 제호를 개칭하였다.
- 1995년 11월 17일 지방지 최초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
- 1997년 4월 1일 제호를 한글로 변경하였고 전면 가로쓰기를 시행하였다.
- 2009년 8월 4일 지령 2만호 돌파
- 2015년 1월 1일 조간으로 전환 (매일신문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부산일보,경남신문도 같은 날에 조간으로 전환)
사시편집
- 땀과 사랑으로 겨레의 빛이 되리
역대 명예회장편집
역대 회장편집
사장편집
- 최덕홍 주교 (1950~1954)
- 임화길 신부 (1955~1956)
- 주병환 (1956~1957)
- 김영호 신부 (1957~1959/1960~1978)
- 신상도 (1959)
- 김덕룡 (1959~1960)
- 전달출 신부 (1978~1989)
- 김경환 신부 (1989~1992)
- 김부기 신부 (1992~2001)
- 11대 정재완 신부 (2001~2004)
- 12대 조환길 신부 (2004~2007)
- 13대 이용길 신부 (2007~2008)
- 14대 이창영 신부 (2008~2013)
- 15대 여창환 신부 (2013~2018)
- 16대 이상택 신부 (2018~)
통계편집
년도 | 발행 부수 (대구) |
발행 부수 (경북)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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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 104,174 | 46,229 | |
2011년 | 102,470 | 45,919 | |
2013년 | 99,813 | 44,925 | |
2015년 | 83,492 | 37,355 | |
2017년 | 84,100 | 37,370 | |
출처: 한국ABC협회, 미디어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