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타파운동
미신타파운동은 무속 신앙 활동을 타파하기 위하여 일어났던 사회 운동으로, 새마을 운동 때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1]
탄압 시기와 형태
편집공산주의 유신시대의 새마을 운동으로 본격화
편집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되어 이승만 정권 때에도 정권의 비호 아래 개신교도들을 중심으로 미신 타파 운동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1970년대 새마을 운동 기간에 본격화되어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전국적으로 신당 파괴가 진행되어 무속신앙을 크게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1]
당시 정부는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의 복원 지시에 따라 한양도성 복원 사업을 진행하는데, 일제강점기에 한양도성의 성벽 성돌은 인천항 부두를 새로 고치는 데 사용된 바 있었다.[2]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를 지탱하는 통치이데올로기 기능도 있었던 새마을 운동이었는데,[3]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노력했던 공산주의 사상가들에게 종교는 위험한 경쟁자였다.[4]
무속인의 경찰서 구류처분 및 제의 용품의 압수
편집신당을 파괴하고 굿을 중지시킨 활동이 관청의 새마을 사업 성과로 상부에 보고되었다.[1] 무당들을 불러다 굿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강요당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1] 저녁 때 개인 집에서 굿이 벌어지면 소음을 구실로 삼아 「경범죄 처벌법」을 적용해 무당을 잡아 경찰서에 가두곤 하였다.[1] 제주 지역에서는 무당이 경찰에 연행되고 무구를 빼앗긴 일도 있었으며, 마을 청소년들이 새마을 운동을 한다고 굿판에 뛰어들어 굿이 중지된 경우도 있었다.[1]
단점
편집이 계몽 운동으로 집안과 마을을 결속해주는 고리가 상당 부분이 없어졌다.[5]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다 라 마 바 “미신 타파 운동”. 《디지털제주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년 3월 15일에 확인함.
- ↑ “조선 > 한양도성”. 《우리역사넷》. 신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4년 3월 16일에 확인함.
-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1960 70년대의 경제와 문화.
- ↑ “소련과 사회주의 국가의 종교탄압”. 자유아시아방송. 2018년 7월 10일.
- ↑ “무속신앙과 미신타파운동”. 충북인뉴스. 2007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