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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 (탄도탄)

백곰 미사일(NHK-1)은 대한민국의 첫 국산 단거리 지대지 탄도 미사일이다. NHK-1는 Nike Hercules Korea-1의 약자이다.

백곰 미사일
Card Stunt for Park Chung-hee.jpg
1973년 국군의 날 행사에 선보인 백곰 미사일
종류 SRBM
국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역사
개발 ADD
개발년도 1974년-1978년
파생형 현무-1
제원
중량 미상
길이 미상
지름 0.9 m

사거리 200 km

최고속도 마하 3
추진제 2단 고체연료
유도장치 관성항법
발사플랫폼 트럭
백곰 미사일과 동일한 외형의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역사편집

1971년 12월 27일,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 멤버로 로켓연구실 실장이던 구상회 박사는 청와대 오원철 경제수석으로부터 급히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청와대에서 오원철 경제수석이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메모를 전달했다. 메모지 서두에는 빨간 잉크로 ‘極秘’(극비)라고 씌어 있었다. 내용은 "국과연은 국방부의 명령을 받는 즉시 지대지 유도탄 개발계획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하고 공군은 유도탄 개발 이후의 작전운영계획을 수립, 대통령께 보고할 것"이었다.[1]

기술편집

외형편집

풍동 시험시설 등이 없어서, 미국 MIM-14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의 외형을 베꼈다.[2]

소프트웨어편집

불황에 허덕이던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의 사거리 개량을 한국에 제안했다. 작업과정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했다.

고체연료편집

미 공군에 고체연료를 납품하던 LPC사가 적자로 폐쇄한 유도탄 추진제 공장 시설을 260만달러라는 헐값에 한국에 팔았다. 원천기술과 장비를 고스란히 국내로 들여왔다.

핵탄두편집

당시 전세계의 사거리 200 km 지대지 탄도 미사일은 오직 6개국만이 개발에 성공했으며, 핵탄두를 장착했다. 2000년대 처럼 고정밀 스마트 재래식 폭격이 불가능해서, 폭발력이 높은 핵탄두를 사용했다. 미국 MIM-14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은 W31 핵탄두를 탑재했다. W31 핵탄두는 핵출력 2, 20, 40 kt의 세가지 버전의 증폭형 핵분열탄이며, 1958년 부터 1989년 까지 2,550발이 생산되었다. MIM-14 나이키 허큘리스에는 20 kt 버전만 장착되었다. 무게 408-428 kg, 직경 76 cm, 길이 100 cm 이다.

프랑스편집

한국은 백곰 미사일 핵심기술을 프랑스에서 도입했다. 백곰에 탑재할 핵탄두 개발도 프랑스 핵무기 연구소 CEA CESTA에 한국 기술자들을 파견해 개발했다. 당시 프랑스는 프랑스 최초의 지대지 핵미사일인 S2 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플루토늄 내폭형 핵분열탄인 무게 700 kg, 핵출력 130 kt MR31 핵탄두를 탑재했다.

경과편집

  • 1966년 미국에서 MIM-14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지대지 겸용 미사일을 수입했다.
  • 1968년 1월 21일, 1·21 사태 발생,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 31명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했다.
  • 1969년 1월 20일, 미국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취임했다.
  • 1969년 7월 25일, 닉슨 대통령이 에서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약소국들은 자신이 알아서 국방을 책임지라는 내용이다.
  • 1970년 7월, 월리엄 로저스 미국 국무장관이 베트남 공화국 사이공에서 열린 월남전 참전국 회의에서 최규하 외무장관에게 "주한미군 2만명 철수"를 통보했다.
  • 1971년 4월 2일, 미국 공화당 닉슨 대통령의 닉슨 독트린에 따라, 미국은 주한미군 7사단을 일방적으로 서울 북부 동두천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 1971년 12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이 1974년까지 사거리 200 km 단거리 백곰 미사일, 1976년까지 사거리 500 km 장거리 현무-2 미사일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항공공업 육성계획'으로 위장명칭을 달았다. 당시 전세계에서 탄도 미사일 사거리 200 km는, 기술적으로 명중률이 매우 낮아서,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의미했다.
  • 1974년 5월 14일, 박정희 대통령이 '항공공업 육성계획'을 율곡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을 재가했다. 미국 MGM-31A 퍼싱 I을 베낀 사거리 500 km 지대지 유도탄을 1978년까지 개발하기로 했다. 당초 1976년 보다 2년 연장했다.
  • 1974년 9월, 대전기계창으로 위장한 유도탄연구소 착공
  • 1974년 10월 19일, 한국-프랑스 간 원자력협력협정이 체결되면서 백곰 미사일용 핵탄두 개발을 시작했다. 이스라엘도 1950년대 프랑스의 핵기술 이전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박정희 정부 당시 한국은 프랑스 핵무기 연구소에서 고폭실험을 완료하였다.
  • 1975년 1월, 안흥측후소로 문패를 단 비행시험장 착공[3]
  • 1976년 1월, 미국 국무부 관리가 방한해 한국의 핵개발 중지를 요구했다.
  • 1976년 1월 26일, 미국 압력으로, 한국은 프랑스와의 플루토늄 재처리 공장 도입 계약을 파기했다.
  • 1978년 9월 26일, 충남 안흥시험장에서 백곰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관했다. 사거리 200 km 로서, 서울에서 평양까지 거리가 180 km 이다. 세계 7번째 지대지 탄도 미사일 개발이다.
  • 1983년 10월 9일,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간신히 살아났다.
  • 1984년, 전두환 대통령이 사거리 200 km 백곰 개량형인 사거리 300 km 현무-1 미사일 개발을 지시했다.
  •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대포동 1호를 발사해 한국 등에 대포동 쇼크가 발생했다.
  • 1999년 4월 10일, 대한민국 국방부는 황해 연안에서 자체 개발한 현무2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고 밝혔다. MGM-31A 퍼싱 I 외양이다. 미국은 사거리 500 km라고 보았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1976년까지 개발하라고 지시했던 모델이다.
  • 2004년 10월 8일, 사거리 300km 현무2 미사일이 전방 모 부대 등에 100여발 실전배치 되었다.
  • 2005년,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에 한국 최초의 플루토늄 재처리 공장 ACPF 준공, 70평 실험실 규모, 매년 플루토늄 20 kg 생산가능
  • 2006년 7월, 사거리 300 km의 현무2 미사일 실전배치 되었다.

더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한국의 무기 이야기] <2> 자주국방의 신호탄 ‘백곰’ 유도탄 (上), 세계일보, 2010-09-28
  2. 최초 유도무기 '백곰' 대한민국 100대 기술에 선정, 헤럴드POP, 2010-12-16
  3. [한국의 무기 이야기] <2> 자주국방의 신호탄 백곰유도탄 (中), 세계일보, 201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