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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邊頤, 1360년1439년 12월 13일)는 조선 초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이지(㶊之). 아버지는 원천부원군(原川府院君) 변안렬(邊安烈)이다.

변이
邊頤
출생 1360년
사망 1439년 12월 12일
국적 조선
본관 원주(原州)
별칭 자 이지(㶊之)
경력 좌군총제(左軍摠制)
전라도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
직업 무관
부모 변안렬(邊安烈)
원주 원씨(原州 元氏)
배우자 이달존(李達尊)의 딸, 의령남씨 남좌시(南佐時)의 딸
자녀 7남 3녀

아들 변상복(邊尙服)은 정종의 서녀 덕천군주(德川郡主)와 결혼하여 조선 왕실의 인척이 되었다.

목차

생애편집

1411년(태종 11)에 상호군(上護軍)에 임명되고 원종공신(元從功臣)에 책록되어[1] 전지(田地) 30결과 노비 30구(口)를 하사 받았다.

1413년 태종이 완산(完山)에 거동했을 때 변이는 판남원부사(判南原府事)로서 관찰사 조원(趙源), 완산부윤 신극공(辛克恭)과 더불어 행재소(行在所)에 가서 왕을 알현했다.[2]

1420년(세종 2) 5월 전라도병마수군도절제사(兵馬水軍都節制使)로 임명되었고,[3] 9월에는 왜선 한 척을 잡고 9급(級)을 베어 상왕이 그의 아들 변차희(邊次憙)를 보내어 선온(宣醞)과 옷감을 하사하였다.[4] 1421년 좌군 총제(左軍摠制)와 전라도 병마도절제사(全羅道兵馬都節制使)가 되었다.[5]

1422년 충청도수군도안무처치사(忠淸道水軍都安撫處置使)로 전보되었고,[6] 1423년 내직으로 들어가 중군총제(中軍摠制)가 되었다.[7]

1424년 하정부사(賀正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진하사(進賀使)인 권희달(權希達)의 죄상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첩을 회수당였으나 1425년 1월 직첩을 되돌려 받아 동지총제(同知摠制)로 전보되었다.

1439년 12월 13일 졸(卒)하였고,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에 있다.

가족편집

  • 아버지 : 원천부원군(原川府院君) 변안렬(邊安烈, 1334년 ~ 1390년)
  • 어머니 : 진한국부인(辰韓國夫人) 원주 원씨(原州 元氏)
    • 배우자 : 의령남씨, 남좌시(南佐時)의 딸
      • 장남 : 첨지중추(僉知中樞) 변차희(邊次熹)
      • 차남 : 남부령(南部令) 변상조(邊尙朝)
      • 3남 : 영중추호군 변상근(邊尙覲)
      • 4남 : 예조참판(禮曹參判) 변상회(邉尙會, 1399년 ~ 1485년)
    • 배우자 : 이달존(李達尊)의 딸
      • 5남 : 감찰(監察) 변상동(邊尙同)
      • 6남 : 간성군수(杆城郡守) 변상빙(邊尙聘)
      • 7남 : 변상복(邊尙服, ? ∼ 1455년)
      • 며느리 : 덕천군주(德川郡主) - 조선 제2대 정종대왕(定宗大王, 1357년~1419년, 재위: 1398년~1400년)의 딸
      • 장녀 사위 : 공신 정유길(鄭由吉)
      • 차녀 사위 : 개성유수 이점(李漸)
      • 삼녀 사위 : 좌찬성 이승손(李承孫)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