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태
생애
편집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차남이다. 660년(의자왕 2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군을 물리치고 수도 사비에 육박하자 의자왕과 태자[1]는 웅진으로 피신하였다. 사비성에 남아있던 부여태는 내성이 포위당하는 와중에도 외람히 왕을 칭하였다. 의자왕의 적손 부여문사는 ‘왕과 태자가 성을 나갔는데 숙부가 멋대로 왕을 칭했으니 당군이 물러나면 우리 부자(父子)는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 측근을 데리고 성 아래로 내려갔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 부여태도 말릴 수 없었다. 소정방의 병사가 성에 올라 당나라 깃발까지 꽂으니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다. 백제 멸망 후 낙양으로 끌려갔으며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가계
편집형은 부여융 아니면 부여효 중 하나로 기록이 상이하며 부여태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의 순서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무왕 | 의자왕 | 부여융? | |||||||||||||||||||||||||
은고 | 부여태 | ||||||||||||||||||||||||||
부여효 | |||||||||||||||||||||||||||
부여연 | |||||||||||||||||||||||||||
부여풍 | |||||||||||||||||||||||||||
부여용 | |||||||||||||||||||||||||||
부여충승 扶餘忠勝 | |||||||||||||||||||||||||||
부여충지 | |||||||||||||||||||||||||||
부여선광 | |||||||||||||||||||||||||||
부여태가 등장한 작품
편집TV 드라마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참고 문헌
편집- 《구당서》83권 열전 제33 소정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