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한문서 편집

  • 내용을 추가하시는 것은 좋지만, 다른 편집자가 쓴 내용을 지우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위키백과는 여러 사람이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백과 사전이기 때문입니다.Yknok29 2008년 2월 27일 (수) 21:28 (KST)답변

김두한 편집

토론:김두한을 읽어 보십시오.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것은 김두한측의 주장이기 때문에, 김두하이 김좌진의 아들이라고 쓰면 안됩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8년 2월 27일 (수) 21:42 (KST)답변

무슨 김두한측에서 주장한다는 겁니까? 한홍구가 쓴 대한민국사에서는 고균 김옥균과 백야 김좌진 관계를 20촌이상이라고 써져있습니다. 실제 고균 김옥균과 백야 김좌진의 관계는 안동김씨 11촌입니다.
현재로서 근거는 김두한 측의 주장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도 증거인가요?) 만주에 남은 김좌진 장군의 자손들이 유전자 검사를 요청했으나 김두한의 자손측이 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김두한 페이지에 김좌진의 아들이라고 적는 거야 아직 아닌 것이 밝혀진 것도 아니니 적기 나름이지만, 김좌진 페이지에 김두한을 아들이라고 적는 건 조금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일단 김두한이 국회의원이 된 것도 "장군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지 종로의 깡패였기 때문은 아니니깐요.라는 종대님 토론 못봤습니까?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08년 2월 27일 (수) 22:01 (KST)답변
  • 정확히 어떤 책과 신문기사에서 나온 내용인지 표기 해야 신빙성이 있음.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ref 태그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라고 쓰고 가운데에다 정확히 누가 쓴 책, 몇페이지에서 인용했다고 쓰기 바랍니다. 편집버튼을 누르고 복사해서 사용하십시오.Yknok29 2008년 2월 27일 (수) 23:08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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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김좌진의 부인은 오숙근,박계숙,라씨 성의 부인 총 3명입니다.

첫째부인 오숙근과에서 자녀 2명 계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둘째부인 박계숙과에서 자녀는 1명이었고 김두한의 어머니입니다.(어느 사이트에서는 김계월이라고 주장하는 글도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라는 점은 주목 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라씨성의 부인은 중국에서 만난분이고 자녀는 1명이고 현재 손녀분이 생존하고있습니다.

그리고 김두한은 1944년 오숙근,김좌진어머니 주선으로 효령대군후손 이재희과 결혼했고 이재희는 김좌진의어머니,오숙근을 평생을 시부모님으로 모셨습니다.(김두한도 일찍 어머니를 여의셨고 큰어머니인 오숙근을 어머니처럼 모셨습니다.)

셋째 라씨성을 가진 분은 중국에서 만났고 자녀 1명 현재는 손녀가 살고있습니다.

그리고 김두한이 미국의해 사형당할 위기였을때 청산리대첩에서 김좌진과 더불어 활약한 이범석장군은 이들에 무죄를 강력하게 나섰고 백범 김구선생와도 친분은 나눴습니다.(실제 노변야화에서 김두한은 정식적으로 김구선생을 존경한다고 말할바 있습니다.)

소위 지식층은 김좌진과 김두한의 연관성을 끊을려고 왜곡을했고 김두한을 더깍고 왜곡하기위해 한낯 거지에 불과한 김춘삼을 미화해 99년 mbc왕초드라마도 방송됨바 있습니다.(요즘에도 김춘삼이 시라소니 이성순을 이겼고 김두한을 동생으로 삼고 친구라고 말하는 글을 종종 볼수가 있습니다.)

결론은 문서로 된 증거가 없으신 거죠? (신문이면 요즘은 대부분이 인터넷으로 열람 가능하니 직접 찾아오시구요) 똑같이 증거가 없는 부분을 삭제하시거나, 증거를 찾아 오셔서 반박 형식으로 추가하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독자연구 금지를 참조하세요. 영어 위키백과에선 정식 규칙이며,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도 사실상의 '불문율'입니다.) --dus|Adrenalin 2008년 2월 27일 (수) 23:38 (KST)답변


김두한과 박정희(일본명: 오카모토 미노루)독재정권과는 상극 사이입니다. 1962년 박정희(일본명: 오카모토 미노루)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할때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의 대신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청산리대첩에서 김좌진과 더불어 활약한 영웅중 한명이셨던 이범석장군은 김두한이 어려울때(사형당할위기) 무죄를 강력히 나섰구요.

백범 김구선생역시 김두한과 친분이 있었고 백범김구선생께서 암살을 당할때 김두한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무고죄로 구속되고 김구선생의 장례식이 지난 몇개월후에 석방됐습니다.

또한 김완섭이 김좌진을 산적떼두목이라고 다음 아고라에서 기재해 김을동은 사자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였고 김완섭이 검찰조사에서 김좌진의 후손이 맞냐고 호적을 공개하라고하자 검찰에서 김을동에게 호적 서류를 제출하라고했고 이에 김을동은 검찰에 호적 등본 서류륽 검찰에 제추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에선 웃었다고 합니다.


이 기사는 김을동이 사자명예훼손으로 김완섭을 고소했을때 인터뷰 기사입니다.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243688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손녀인 탤런트 김을동씨는 김장군을 '산적떼의 두목'이라고 글을 쓴 친일작가 김완섭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은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명예훼손을 막기 위한 조처라고 강조했다.

탤런트 김을동씨는 1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진행:신율 저녁 7:05-9:00)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모욕을 해도 직계후손이 아니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가 없어서 그동안 김완섭씨가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란 책을 쓰고, 정신대 할머니를 모욕하고, 명성황후 시해를 모욕하는가 하면, 독도는 일본땅이란 터무니없는 망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을 고소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그동안 사람들이 분한 마음에 김씨를 응징할 방법을 찾지못해 어찌할 지 몰라 했었다"면서, "김장군까지 모독하길래 이번을 기회로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고소를 하게됐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김을동씨는 또, 김완섭 씨가 검찰 조사와 관련해 '김을동 씨가 김좌진 장군의 진짜 손녀인가, 호적 초본을 제시해야 한다, 아니면 고소권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데 대해 "웃기더라"라고 말하며 "검찰에서 '이 사람을 꼭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하길레 호적등본을 다 제출했고 검찰에서도 기가 막혀서 웃었다"고 말했다.

친일작가 김완섭씨는 지난 2월,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일본에게 돌려주라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모욕죄로 처벌해 달라며 댓글을 단 네티즌 1054명을 무더기로 검찰과 경찰에 고소했으며, 김좌진 장군을 '산적떼의 두목'이라고 써 논란을 빚었다.

경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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