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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합니다 (토론) 2014년 9월 7일 (일) 08:44 (KST)답변

알평 문서를 옮깁니다 편집

1. 위키백과에서 역사적인 인물의 서술 근거는 1차 사료를 비롯한 역사 기록이 우선입니다. 족보는 해당 가문의 주장으로서 가치는 있지만 역사 기록보다 우선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족보 틀이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이해당사자 틀로 변경되어 해당 내용이 역사적 사실(기록)이 아니라 내용과 이해관계에 있는 특정 가문의 주장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2.위키백과:문서 이동 요청/2013년 8월#알평->이알평을 근거로 제시하셨는데, 정작 해당 요청에는 아무런 근거도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경주 이씨의 주장만 있을 뿐입니다. 엄연히 사료 상으로 알평은 성씨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알평의 가문에게 이씨 성이 내려진 것은 유리왕 때의 일로 알평 생전의 일이라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역사적으로는 유리왕 때 사성 받은 일조차도 후대의 부회로 보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그러므로 알평의 표제를 이알평으로 하는 것은 틀린 서술입니다.

3. 알평의 선대에 대한 내용을 주석으로 서술하셨는데, 그에 대한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고만 쓰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에 의거 삭제 대상입니다. 최소한 어디에서 전해 내려오는지라도 제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출처가 제시되었다면, 그 내용은 본문에서 서술될 일이지 주석으로만 언급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27일 (월) 11:10 (KST)답변

역사 내용은 사관에 따라서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므로 해당 문서내용을 보완하였습니다. 무조건 해당내용 삭제보다는 해당하는 내용 소개가 바림직하다는 판단입니다. 이알평으로 검색어를 치면 알평으로 나타나는 상태에서 알평을 검색하면 이알평 문서가 나오도록 알평문서을 이알평으로 이동하였습니다. --Werter39 (토론) 2015년 6월 6일 (토) 11:23 (KST)답변

이알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편집

귀하께서는 “두산백과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와 네이버지식백과”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저들 백과사전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직접 보십시오.

더 설명이 필요합니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아예 이렇게까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6부(部)에 이(李)·정(鄭)·손(孫)·최(崔)·배(裴)·설(薛)이라는 성의 비정은 중국식 성을 후세에 붙인 것으로, 알평이 경주이씨의 시조라는 것은 후세에 붙인 것이다.” 이알평으로 옮기지 마십시오. 이는 명백하게 틀린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6월 9일 (화) 18:00 (KST)답변

이알평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른 사용자의 편집요약에 대해서 성의를 가지고 보기를 요청합니다. 따로 적용할 필요없이 두산백과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와 네이버지식백과 성씨와 본관의 경주이씨를 근거로 이알평이 더 어울립니다. 역사에 대하여 사용자 Xakyntos의 사관에 따른 편집을 강하게 고수하고자 하여 사용자 Xakyntos는 세번이나 차단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 또한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라 육촌장과 형편성을 맞추고자 그러한 알평이란 표제어를 사용했다고 보여집니다. 혁거세의 경우는 네이버 백과사전 검색은 박혁거세와 혁거세 나누져 서술되어 있고, 이알평으로 검색어를 치면 알평으로 나타나는 상태에서 알평을 검색하면 이알평 문서가 나오도록 하여 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해당 백과사전의 경주이씨 문세에는 무조리 이알평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용자의 편집요약에 대해서 성의를 가지고 보기를 거듭하여 요청하고 사용자 Xakyntos 자신의 편집은 무조건 옳기 때문에 사용자 Xakyntos의 사관(史觀)을 무조건 고수해야 한다는 부적절한 편집태도는 버리기 바랍니다. --Werter39 (토론) 2015년 6월 10일 (수) 13:53 (KST)답변

위키백과의 백:신뢰 정책에 따라, 족보를 비롯한 특정 가문의 주장은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위키백과에는 이해당사자의 편집이므로 해석에 주의하라는 이해당사자 틀도 존재하고, 알평 문서에도 붙어 있습니다. 제가 위에 인용해 놓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을 보십시오. “알평이 경주이씨의 시조라는 것은 후세에 붙인 것이다.” 이 한 문장으로 끝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알평이라는 것을 표제로 사용하는 것은 애초부터 신뢰할 수 없는 내용을 근거로 한 틀린 표제가 됩니다. 귀하의 편집을 되돌리는 사람이 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귀하가 더 잘 알고 계실텐데요. 이는 사관의 문제가 아니라 위키백과의 원칙 문제입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6월 10일 (수) 13:06 (KST)답변
덧붙여, 귀하는 경주 이씨에 대한 백과사전을 찾아보셨지, 알평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특정 가문의 입장에 따른 내용보다 해당 인물을 직접 설명하는 것이 더 권위가 있음은 명백합니다. 왜 알평의 이름을 알평으로 찾지 않고 경주 이씨로 찾아야 합니까? 어느 쪽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것인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6월 10일 (수) 13:09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