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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군 이요(西平君 李橈, 1687년 ~ 1756년)는 조선왕족이자 문신이다.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서평군
西平君
지위
(君)
이름
이요
李橈
신상정보
출생일 1687년
출생지 조선 경기도 광주 화춘군 사저
사망일 1756년 (70세)
사망지 조선 한성부 인평대군 사저에서 병사
매장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경기도 의정부시 자일동
왕조 조선
부친 인평대군(양부)
화춘군(생부)
모친 복천부부인 동복 오씨(양모)
화춘군부인 삭녕 최씨(생모)
배우자 정부인 여흥 민씨
계부인 삭녕 최씨
자녀
기타 친인척 민정환(초취 장인)
최경준(계취 장인)
선조 이연(고조부)
신성군 이후(양증조부)
인성군 이공(친증조부)
능창대군 이전(양조부)
인조 능양대군 이종(양종조부)
소현세자 이왕(양종숙부)
효종 봉림대군 이호(양종숙부)
경완군 이석린(양형)[1]
양원군 이환(양조카)
여흥군 이해(양종손)[2]
여릉군 이기(양종손)
여천군 이경(양종손)
안흥군 이숙(양종손)
현종 이연(양재종형)
숙종 이순(양재종질)
경종 이윤(양삼종손)
영조 연잉군 이금(양삼종손)
종교 유교(성리학)
정당 무소속

목차

생애편집

일생편집

선조의 고손자로, 선조 서자 인성군의 손자였던 화춘군 이정의 차남이다. 1696년 여흥 민씨 민정환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1699년 사별하였으며, 1700년 삭녕 최씨 최경준의 딸과 재혼하였으나 후사가 없었다.

1723년 이후부터는 사신 신분으로 청나라에 여러 번 다녀와 뛰어난 외교 능술로 경종영조의 신임을 연이어 얻었고, 1724년 7월 경종의 명에 의해 삼종숙부 인평대군의 양자로 출계하였다.

이후 그는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갈 때마다 옹정제건륭제가 그의 붓글씨 솜씨에 감탄하여, 급기야는 청나라 황궁에 있는 10개 문의 현판에다 붓글씨를 쓰게 하여 그의 글씨체가 조선과 청나라에 널리 알려졌다. 또 숙종 말기~영조 초중기에 건립된 종실 신도비의 대부분이 서평군의 글씨이다. 또 서평군은 거문고 연주에도 능달하였다.

1753년에 갑자기 풍병으로 몸져 누워 3년을 와병하다가 1756년에 향년 70세로 훙서하였다.

그는 종실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서민적인 성격을 가진데다가 영조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까닭에 영조가 추진하는 탕평책에 큰 일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조의 신임을 빙자한 나머지 교만한 술책으로써 부정축재를 하여 조정 여러 간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경완군 이석린(慶完君 李石磷)은 1640년 청나라 둥베이 지방 헤이룽장 성 선양에서 소현세자의 차남(次男)으로 출생하였으며 그의 생부는 소현세자 이왕이고 1644년에는 생부와 아울러 본국 조선에 귀국 이후 생부 소현세자가 이듬해 1645년 향년 34세로 의문사한 3년 뒤 1648년에 향년 9세로 조선 전라도 제주군에서 주살되었으며 사후 1671년 2월에 숙부 인평대군 이요의 양자(養子)로 출계 처분되었다.
  2. 여흥군 이해(驪興君 李垓)는 1678년 한성부에서 출생하였으며 1682년 천연두에 걸려 향년 5세로 요절하였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