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Маньчжурия под оккупацией СССР (1945~194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5년 9월부터 1946년 5월까지 만주소련의 점령 상태에 있었다.

목차

배경편집


만주의 역사
선사 시대
고조선 동호 예맥 숙신
요서군 요동군
요서군 요동군
전한 요서군 요동군 위만조선 흉노
한사군 부여
후한 요서군 오환 선비 읍루
요동군 고구려
현도군
창려군 공손군벌
요동군
현도군
서진 평주
모용선비 우문선비
전연 평주
전진 평주
후연 평주
북연
북위 영주 거란 고막해 실위 두막루
동위 영주 물길
북제 영주
북주 영주
유성군 말갈
연군
요서군
영주 송막도독부 요악도독부 실위도독부 안동도호부 발해 흑수도독부
오대 십국 영주 거란 발해
상경도   동란국 여진
중경도 정안국
동경도
동경로
상경로
북경로
함평로
동요국 대진국
요양행성
요동도사 노아간도지휘사사
건주 해서
(후룬 구룬)
야인
후금
만주
동삼성 러시아
외만주
중화민국
(동삼성)
소련
(극동)
만주국
소련 점령하 만주
중화민국
(중국 동북 지역)
소련
(극동)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동북 지역)
소련
(극동)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동북 지역)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러시아 극동)
한중 관계
한러 관계

1931년 일본 제국 육군의 주력부대 중 하나였던 관동군은 만주 사변을 일으켜 만주 지역을 점령하였다. 1932년 3월 1일 일본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다가 퇴위한 선통제를 황제로 내세웠다(강덕제). 일본 제국에 철저히 종속된 괴뢰국가였던 만주국은 1945년 8월 18일 붕괴되었다. 소련군1945년 8월 19일 선양공항에서 일본으로 도주하려던 선통제를 체포한 뒤 만주 전역을 점령하였고, 같은 해 11월 중화민국이 이 지역들을 넘겨받았다.

만주국의 영역은 한반도중화민국, 소련, 몽골인민공화국, 내몽골자치연합정부(일본의 괴뢰정권)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만주국은 강덕제를 원수로 하는 국가로서, 만주족한족, 몽골족, 한민족, 야마토 민족오족협화로 이루어진 “만주인”에 의한 민족자결의 원칙에 기초에 둔 국민국가를 표방했다. 그러나 실제 통치는 관동군이 주도하였다.

1932년 국제 연맹리튼 조사단은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 정권이며, 만주 지역은 중화민국의 주권 아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중화민국의 입장을 지지해 일본정부를 비난했다. 이로 인해 일본 제국은 1933년 국제 연맹에서 탈퇴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 주요 추축국 중 하나인 이탈리아 왕국이 항복을 하고 나치 독일이 패전할 기미를 보이자 1945년 2월 4일부터 2월 11일까지 소련 흑해 연안에 있는 크림 반도의 얄타에서 연합국의 지도자들이 모여 나치 독일을 패배시키고 그 후를 의논하기 위하여 회담을 하였다. 회담의 수뇌는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소비에트 연방의 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lin),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다. 회담 결정내용 중에는 소련의 대(對) 일본 참전도 포함되었다.

 
얄타 회담에 모인 수뇌들 (좌로부터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소련얄타 회담을 통해 1945년 8월 초 일본 제국과 맺은 소비에트 연방-일본 중립 조약을 파기하고 일본 제국에게 선전 포고를 하여 일본 제국소련의 전쟁이 만주국에서 펼쳐졌다[1] . 그리고 이 전쟁을 통해서 사할린 섬 남쪽도 탈환하였다.[2]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기 전까지만 해도 소련은 대일 참전에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일본의 항복을 앞당기기 위한 연합국들의 채근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권고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주 전의 포츠담 선언에서도 빠졌다. 1941년 일본과 체결한 불가침 조약이 여전히 유효한 상태라는 게 표면상의 이유였다.

그러나 수면 아래서는 계속해서 대일 참전의 실리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홋카이도 분할 통치를 대일 참전의 요구 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전후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최대한 몸값을 높이는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이 원자 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 결정적으로 일본의 패망을 앞당기자 허겁지겁 일본에 선전 포고한 것이다. 결국 소련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지 이틀 뒤인 1945년 8월 8일 부랴부랴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포츠담 선언에 합류했다. 일주일 뒤 히로히토(裕仁)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나왔다.

중국령 만주에서 승리한 소련은 만주국을 멸망시켰고 8월 9일에는 한반도의 웅기, 나진으로 진출하여 마침내 11일에 점령하였다[3]. 이후 남진을 계속하면서 8월 13일에 청진으로 진출하였다.[4] 그 결과 만주국과 몽강국은 각각 8월 18일과 19일에 완전히 멸망함으로써 소련군은 만주, 내몽골, 한반도 북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회편집

경제편집

이후편집

1946년 5월 3일 소련은 만주 지역을 중화민국에 반환하였고, 1949년 중국 공산당국공내전 승리 이후부터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통치하고 있다.

뤼순 지역은 소련이 1955년까지 해군기지로 사용하다가 1955년에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하였다.

관련 문서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