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운영(중국어 간체자: 沈云英, 정체자: 沈雲英, 병음: Shen Yunying), 아명 심관제(沈官弟)[1]는 17세기 중국 명나라의 여장군이다. 절강성 소산부 소산현(현 저장성 항저우시 샤오산구) 출신으로 본관은 장항 심씨이다. 호광영주부도주에서 명나라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요족 군대를 물리쳐 도시를 수호했다. 남편 가만책이 형주에서 전사한 후 벼슬을 그만두고 교사로 자급자족하다가 순치 16년(1660년)에 세상을 떠났다.

심운영
沈雲英
명나라유격장군
1638년 ~ 1642년
출생일 1624년
출생지 절강성 소산부 소산현
사망일 1660년
사망지 절강성 소산부 소산현
국적
성별 여성
본관 장항 심씨
부친 심지서
모친 황씨
배우자 가만책
형제자매 심향림
자녀 심조양
충성 대상
복무 명군
복무기간 1638년 ~ 1642년
최종계급 유격장군

생애 편집

심운영은 천계 4년(1624년) 절강성 소산부 소산현에서 심지서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큰 키를 지녔고 성격이 온순하여 독서를 좋아했으며, 특히 무술에 관심이 많아 무술 관련 도서를 많이 읽었지만 재능이 없어 궁술과 승마에 소질이 없었다.[2]

성장한 그녀는 호남성에서 장헌충(1605-1647) 휘하의 도적에게 맞서 싸웠다.[3] 숭정 11년(1638년) 호광성 등지의 요족 반군이 도주를 공격하자 심지서는 적을 험한 지형에서 포위섬멸하려 했으나 채관치가 일부러 원군을 보내지 않자 고군분투하다 결국 전사하였다.[4] 심운영은 급히 10여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적을 야습하여 30명가량 적병의 목을 베고 아버지의 시신을 회수하였으며,[5] 또 대대적으로 영문을 열고 결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자 적들은 황급히 퇴각하였다.[6] 전쟁이 끝난 후 심운영은 아버지의 공적을 보고하는 동시에 채관치를 상관에 대한 태만죄로 고발하였는데,[7] 채관치가 동림당의 명신(名臣)이었기 때문에 숭정제는 그를 질책만 하고 전출시킨 후 증앵을 후임으로 임명해 3성의 병마를 조달시켜 반군을 평정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심지서를 소무장군으로 추숭하고 심운영을 유격장군으로 임명해 병사들을 통솔하게 했다.[8]

숭정 12년(1639년) 양사창 휘하의 도사 가만책이 군무 인수인계 때 심운영(沈雲英)을 알게 되었는데, 마침 가만책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새 아내로 맞으려고 하였다. 당시 가만책은 이미 40세였고, 심운영은 겨우 18세였기 때문에 심운영의 어머니인 황씨는 둘의 혼인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심운영과의 혼인을 포기하지 않았던 가만책은 백은 천냥을 초례로 내놓았고, 어사를 중매인으로 청하여 결국 숭정 13년(1640년) 봄에 심운영과 혼인하였다.[9] 명대 말기에는 군사 상황이 급박해 자리를 비울 만한 상황이 별로 없었기에 실질적으로 이 둘이 만난 것은 100여일 밖에 되지 않았다. 숭정 15년(1642년) 12월 가만책은 형주에서 전사하였으며,[10]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심운영은 군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였다.[11]

과부가 된 심운영은 고향으로 돌아온 후 처음에는 여직공으로 자급자족하다가 이후 서당을 설립하였으며,[12] 본족의 자제들만을 대상으로 경사와 서예를 가르쳤다. 유족자 심조양은 그녀에게 《춘추호씨전》을 배우면서 명사가 되었다.[13] 순지 16년(1659년)에 3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14]

각주 편집

  1. Pennington, Reina (2003). 《Amazons to Fighter Pilots -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Military Women (Volume Two)》. Westport, Connecticut: Greenwood Press. 398쪽. ISBN 0-313-32708-4. 
  2. 《谦斋文集》卷6《女云英传》:“云英身长七尺,面黑无姿容,平居恂恂,下帷读书,非有雄略,弓马亦非所长。”
  3. Pennington, Reina (2003). 《Amazons to Fighter Pilots -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Military Women (Volume Two)》. Westport, Connecticut: Greenwood Press. 398쪽. ISBN 0-313-32708-4. 
  4. 《道光永州府志·卷十三·良吏传》:“崇祯十年,猺贼犯永州,监司蔡官治御寇败绩。明年,寇益炽,奉檄出师。至绪命宁远卫弁夏某诱贼设伏于险,以待期鸣礟为号,将尽歼焉。且约监司出兵为后劲,逼贼于木垒。夏畏贼弃礟遁,蔡官治忌功不为援,贼遂出险。至绪与贼遇,知必死,尽力血战……遂遇害,贼掠其尸去,时戊寅四月廿五日也。”
  5. 《道光永州府志·卷十三·良吏传》:“至绪有女云英,小字官弟,年甫笄,读书知兵,有父风。痛父殁,帅十骑仓促赴贼,贼骇愕。连杀三十余级,负父尸还。”
  6. 《西河集》卷97《故明特授游击将军道州守备列女沈氏云英墓志铭》:“归而启营,示以再战,寇避其威,立徙邻郡。”
  7. 《道光永州府志·卷十三·良吏传》:“叩大府辕门,挝鼓讼父功,数监司逗遁玩寇罪,且曰:‘吾将走京师愬登闻奏状天子。’”
  8. 《道光永州府志·卷十三·良吏传》:“抚按上其事。得旨逮夏于理,斥蔡官治,而调曾樱,敕三省临近兵会剿之,寇始平。至绪得赠昭武将军,荫一子入监。以云英为游击,仍领其部众。”
  9. 《萧山长巷沈氏续修宗谱》卷38《遥祭明故夫君实授都司对庭贾公祭文》:“己卯,君镇湖南,英名赫赫,威武桓桓,衡襄六郡,赖君以安。妾报父仇,治兵邂逅,君适丧偶,蹇修来仪。妾年二九,君年四十,吾母固辞。君不能弃,复以千金求媒侍御,庚寅余春,遂偕伉俪。”
  10. 《萧山长巷沈氏续修宗谱》卷38《遥祭明故夫君实授都司对庭贾公祭文》:“壬午仲冬,仍复原职,立功赎罪。贼兵百万,云集荆南……季冬望后,城陷君死,士卒讣闻,断肠裂腑。”
  11. 《皇明四朝成仁录》卷3《道州死事传》:“云英之夫,四川人贾万策者,故阁部督师标大剿营都司也,奉命镇守荆州南门。贼陷荆州,万策遇害。云英因哭辞诏命,领军俟代。”
  12. 《谦斋文集》卷6《女云英传》:“家居以女工食足,未尝逾阈也。后以年洊饥,女工不足给,则开塾教女子,以笔墨糊其口者。”
  13. 《明遗民录》卷48《沈云英》:“国变后,蠲弃服饰,隐居里门,为女教授。素工书法,旁涉经史,然非本宗子弟不教也。族子兆阳者,从之授《春秋胡氏传》,为知名士。”
  14. 《谦斋文集》卷6《女云英传》:“十有六年,年三十八以卒。”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