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선

안국선(安國善, 1878년 12월 5일 ~ 1926년 7월 8일)은 구한말의 작가이자 일제 강점기 초기 시대 관료이다. 본관은 죽산(竹山)이며 경기도 안성군 고삼면에서 출생했다.[1]

안국선
安國善
조선총독부경상북도 청도군 군수
임기 1911년 1월 31일 ~ 1913년 4월 30일
군주 무쓰히토
요시히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리 가쓰라 일본 총리
사이온지 일본 총리
가쓰라 일본 총리
야마모토 일본 총리

신상정보
출생일 1878년 12월 5일
출생지 조선 경기도 안성군 고삼면
사망일 1926년 7월 8일(1926-07-08)(47세)
사망지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학력 일본 게이오 대학교 법학과 학사
일본 도쿄 정치전문학교 전문학사
경력 신소설 작가 출신
정당 무소속
부모 안경수(양부)
이영자(양계모)
안직수(생부)
자녀 안형순(장녀)
안소순(차녀)
안회남(장남)
안장근(양차자)
친인척 안용승(5촌 종질)
안막(5촌 종질)
최승희(5촌 종질부)
안재승(5촌 종질)
안성현(재종손)
김수영(외손)
차중락(외손)
차중광(외손)
차승우(외증손)

1911년부터 약 2년간 경상북도 청도군 군수를 역임했다.[1]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할아버지 : 안광묵(安光默)
  • 생부: 안직수(安稷壽)[2]
  • 양부: 안경수(養父: 安駉壽)[3]
  • 아들(장남) : 안필승 -개명-(安懷南)
  • 養子(양차남) : 안장근(安長根) 1911년생~2000년 7월 2일 하세[4]

저서편집

  • 소설
  • 저술
    • 《외교통의(外交通義)》
    • 《정치원론》---민족문화연구원 소장책자
    • 《演說法方》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아명 안필수
  3. -- 1900년 5월 28일 사형당한 의민공 安駉壽의 양자로(死後 11년後)입적됨. 서울 중구 茶洞 3번지 중구청 제적본기록
  4. 本家 부친은 安泰淳이고 조부가 安瑞鉉장군이며 安駉壽독립협회장의 이복 장조카이다. 광무2년 漢城右尹을 역임하였고 1888년 6월 18일 병조판서 민영환의 발령으로 강화도 삼별초 別將(장군)으로 임명했고 군에서 예편후, 韓城右尹에 재직중 삼촌 안경수의 고종폐위 주동자로 일본으로 망명가자 *구속되어 승만청년과 함께 투옥중 안경수장군 교수형집행 다음날 오전에 부활된 연좌형에 따른 비밀리에 참수 되었다. 별기군 강화수군(京畿右營) 해군사령관(中軍) 嘉善大夫 안서현장군의 기록은 고종황제 일기장인 일성록에 딱 한 줄의 기록만 남아있고 행정적 기록은 거의 98% 이상 증거인멸 폐기조치된 실정인데 조선왕조실록 고문서 별단기록인 <<증건도감의궤>>賞典에 3회에 걸친 훈장격의 賞을 받았던 기록(尹容善,內閣)이 몇 군데 기록이 남아있다. 승정원일기에 1888년 무관출신으로 (별기군)삼별초사령관으로 병조판서 민영환이 임명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嘉善大夫 안서현장군 직계손자가 安長根이고 안국선은 안경수(安駉壽)독립협회장의 이복 조카의 신분이었다. 안장근의 가계 내력은 여동생(安小順)이 낳은 아들이 바로 1968년도 유명한 히트곡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고 요절한 가수 車重樂이다. 안경수(安駉壽)장군의 부친 安光默(족보.官報:광일)은 죽산안씨 현감공파 31대손 종가집이며 김홍집총리대신이 수신사로 일본외교 사절단 파견시 書章官(정4품)을 지낸 현감,부사직의 安光默의 後妻가 낳은 아들이었고 그의 화려한 괸직경력은 이화여자대학원 석사논문(송경환)에 상세한 년도 날자 별로 정리되어 기록되었다. 안경수 슬하의 자손은 본디 딸만 둘이고 정식 족보상의 아들은 없었고 기생에게서 출생한 安國泰란 혼외자식(매천야록-황헌기록)은 있었으나 멸문지화당한 종가는 완전히 몰락 행방불명 단죄받고 손이 끊겨진 지경에 안경수의 양자로 死後11년후 입적된(중구청제적본기록)된 안국선은 또다시 자신의 양자로 안장근을 데리고 歸鄕했던 것이다. 부친 안태순家의 장남은 安興國 였는데 조부가 사형당한 일로 집안에서 두문불출 가슴알이 속병만 앓다가 39세 나이로 병사하자 경기도 안성군 고삼면서 만 6년간 살았던 안장근씨는 1926년 안국선 조기사망 후 本家도 손이 끓어져 되돌아 왔지만 養父(안국선)의 親子가 월북한 사실로 집안의 祭祀(제사)를 모실 사람도 없고 추석,설 명절대 차례를 드릴적마다 생전 86세까지 정성껏 안국선의 영전에 향불을 피우시다가 2000년 7월2일 90세 나이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