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회남
안회남(安懷南, 1909년 11월 15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 겸 정치인이었다. 개명하기 이전의 이름은 안필승(安必承)이고, 나중에 안회남(安懷南)으로 개명(改名)하였다.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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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 |
본명 | 안필승(安必承) |
출생 | 1909년 11월 15일 대한제국 한성부 |
사망 | ?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직업 | 소설가, 문학평론가 |
학력 | 경성휘문고등보통학교 중퇴 |
경력 | 조선로동당 당무위원 조선문학가동맹 소설분과위원장 |
활동기간 | 1931년~1954년 |
장르 | 평론, 소설 |
부모 | 안국선(부) |
형제 | 안장근(양남동생) |
친지 | 안경수(양조부) 이영자(양계조모) 안필수(친조부) 안막(6촌 남동생) |
주요 작품 | |
소설 《발(髮)》 | |
웹사이트 | 안회남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생애
편집신소설 《금수회의록》의 작가인 안국선의 외아들로, 한성부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경기도 안성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경성 휘문고보 동창인 소설가 김유정과는 절친한 사이였으며, 김유정이 요절하기 전 마지막으로 쓴 편지글이 안회남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193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발(髮)〉로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이태준, 박태원, 이상 등을 비롯한 구인회 동인들과 함께 활동을 했던 안회남의 초기 작품은 심리 묘사 위주로 신변을 다룬 사소설(私小說)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후 급격한 경향의 변화를 보였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 일본에 1년가량 징용으로 끌려갔다온 후로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냈고, 월북 이후로 추정되는 1948년 발표된 중편인 《농민의 비애》는 미군정의 폭정으로 농민들의 생활이 일제 강점기보다 더 비참해지고 있다는 사회 고발적인 내용이다.
광복 후 좌익 계열 문학 단체인 조선문학건설본부에 이어 조선문학동맹 결성에 참가하여 소설분과위원장을 맡았다. 1947년경에 월북하였고, 한국 전쟁 시기에 종군작가단에 참가하여 서울에 왔다가 박태원, 현덕, 설정식 등 아직 월북하지 않고 있던 문인들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돌아갔다. 1960년대 숙청되었다는 설만 있을 뿐, 1954년경까지의 활동만 확인되었고 이후 행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주요 작품
편집소설
편집- 《발(髮)》
- 《농민의 비애》
가족 및 친척 관계
편집인간 관계
편집학력
편집- 경성 수송보통학교 졸업
-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 중퇴
같이 보기
편집참고자료
편집- 권영민 (2004년 2월 25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528쪽. ISBN 89-521-04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