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범 (1890년)

안병범(安秉範, 일본식 이름: 亀村貞信가네무라 사다노부, 1890년 ~ 1950년 7월 29일[4])은 일제강점기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안종인(安鍾寅)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안병범
安秉範
출생지 조선 한성부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
본관 죽산(竹山)
자녀 장남 안광호(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준장 전역)[1][2]
차남 안광수(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대령 전역)[3]
복무 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09년 ~ 1950년
근무 육군 제103여단
최종계급 일본군 육군 대좌
대한민국 육군 대령 (준장 추증)
지휘 여단장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생애 편집

한성부 출신이며 대한제국 말기에 무관 생도로 일본에 유학했다.[5] 육군중앙유년학교를 거쳐 1912년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근무했다. 영친왕 시종무관과 일본군 보병 대좌를 지냈으며, 아들 안광수도 일본육사에 진학시켰다.[6]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되었고, 안병범은 군사 경력자 기용 방침에 따라 1948년 다시 육군사관학교에서 1주일 동안 훈련을 받은 뒤 제8기 졸업생이 되었다.[7] 안광수와 함께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계급도 같은 육군 대령이 되었다.

국방부 수도방위대 자문위원과 육군 제103여단장 등을 역임하다가 1950년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개전 초기에 서울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인왕산에서 칼로 자결했다. 안병범의 동생 두 명도 한국 전쟁 중 전사했다.[8]

사후 편집

1955년에 안병범장군순의비가 제막[9] 되었으며,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혀 있다. 고은의 《만인보》에도 실려 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 안광수와 함께 포함되었다.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육사 2기통위부 보병학교·기갑학교·포병학교 졸업을 거쳐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졸업 이후 1992년 7월 2일에 69세로 별세.
  2. “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 위패 목록”. 2017년 3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3월 23일에 확인함. 
  3. 1961년 6월 3일을 기하여 육군 대령 예편 이후, 1975년 1월 29일에 향년 51세로 별세.
  4. 강만길 (1995년 5월 1일). 〈제1공화국과 친일세력 - 제1공화국에서의 친일 인맥〉. 《해방전후사의 인식 (2)》. 서울: 한길사. ISBN 89-356-0001-6. 
  5. “軍部에 잇는 朝鮮人士官”. 《삼천리》 제6권 (제9호). 1934년 9월. 
  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 (2001년 6월 1일). 〈제4부 백남권 - 귀국과 창군 활동〉.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서울: 선인. ISBN 89-89205-15-8. 
  7. “국방부, 李俊植·金錫源 등 군사경력자 9명을 고급장교로 기용”. 평화일보. 1948년 12월 21일. 
  8. 조갑제 (1998년 10월 1일). 〈제11장 쿠데타 연습 : 李承晩 제거 계획 - 陸本의 深夜 참모회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3》. 서울: 조선일보사. ISBN 89-7365-194-3. 
  9. “安秉範준장 순의비를 제막”. 조선일보. 1955년 10월 26일. 3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