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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仁王山)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서대문구에 걸쳐있는 이며 전체 면적은 1,086,696.50m2이다.[1]

인왕산
仁王山

인왕산 바위
높이 338.2 m
위치
인왕산 (대한민국)
인왕산의 위치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대문구
산맥 광주산맥
좌표 북위 37° 35′ 05″ 동경 126° 57′ 31″ / 북위 37.584854° 동경 126.958694°  / 37.584854; 126.958694좌표: 북위 37° 35′ 05″ 동경 126° 57′ 31″ / 북위 37.584854° 동경 126.958694°  / 37.584854; 126.958694

바위산이기 때문에 조망도 좋고 기차바위·치마바위·매바위·범바위·이슬바위·모자바위·선바위·지렁이바위 등이 저마다 기이한 모습들을 뽐내고 있다.[2] 산수화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가 유명하다.

목차

일화편집

강감찬편집

요나라의 침입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강감찬 장군이 젊을적에 이 지역 판관으로 부임을 하였는데 인왕산과 북한산 일대에 호랑이가 많아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강감찬은 노승으로 변신해있던 호랑이들의 대장을 알아보고 호통을 쳤으며 호랑이들은 도망을 갔다고 한다.

필운대편집

조선 중기의 명신 필운 이항복이 살던 곳이다.

박태성편집

박태성이라는 사람은 고양군에 묻힌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뵙고 난 뒤에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양군에 가려면 무악재를 넘어가야 하는데 어느날부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박태성을 태워줘 아버지의 산소까지 데려다주었고 집으로 돌아 올 때도 데려다주었다고한다. 호랑이는 40년간 박태성을 도왔고 박태성이 죽었을때는 산소 옆에서 같이 죽었다고 한다. 이에 박태성의 후손들은 호랑이를 박태성의 산소 옆에 묻어주었고 제사까지 함께 지내주었으며 묘소는 북한산에 위치해있다.

정약대편집

조선 고종 시절 대금의 명인이였던 정약대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었으며 한 곡조가 끝날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를 한 알씩 넣어 나막신에 모래가 가득차면 돌아갔다고한다.

윤동주편집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인왕산 부근에 살았었다. 이를 기념하여 윤동주 시인의 공원을 조성했으며 공원은 자하문고개 근처에 위치해있다. 바로 옆의 청운공원은 서울의 조망명소 중 한 곳이다.

안병범편집

한국 전쟁 당시 안병범 대령은 (준장 추증) 낙오병 등을 모아 유격대를 결성해 인왕산에서 활약하다가 국군의 참패 소식을 듣고 조국의 처지를 한탄하며 자결하였다.

1·21사태편집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 (경무관 추서)과 정종수 경장 (경사 추서)이 무장공비를 막다가 자하문 아래에서 전사하였고 경복고등학교의 수위였던 정사영씨가 살해당하였다. 무장공비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씨는 인왕산에서 생포됐다. 이후 인왕산은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3년 이후 부분 개방됐다.

대괴수 용가리편집

김기덕 감독의 영화 '대괴수 용가리'에서는 인왕산 용가리가 나와 경복궁, 서울시청 등의 문화재들을 파괴하는데 이순재가 이를 물리친다.

속담편집

  • 인왕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 간다.
    • 어떤 한 사람이 잘되어 세력이 커지면 그 덕을 입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많게 된다는 말.
  •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있나.
    • 그 방면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말.
  • 인왕산 중허리 같다.
    • 배가 부른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인왕산 차돌을 먹고 살기로 사돈의 밥을 먹으랴.
    • 아무리 어렵고 고생스러워도 처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싶지는 아니함을 이르는 말.[3]

주변 시설편집

문화재편집

사진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