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양승태(梁承泰, 1948년 1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제15대 대법원장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양승태
梁承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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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15대 대법원장 | |
임기 | 2011년 9월 25일 ~ 2017년 9월 25일 |
전임 | 이용훈 |
후임 | 김명수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48년 1월 26일 | (75세)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밀양군 |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
경력 |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부산지방법원장 특허법원장 대법원 대법관 제16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
본관 | 남원 |
상훈 | 국민훈장 무궁화장(2017년) 청조근정훈장(2011년) |
생애 편집
1970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사법연수원 2기를 수료한 후 법관으로 임용되어 1975년 11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대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제주지방법원, 사법연수원, 법원행정처, 부산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였다.
1998년 IMF 구제금융사건 당시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수석부장으로 재직하였고 파산실무연구회를 조직하여 파산 관련 제반 법률문제를 연구하였다.
2002년 부산지방법원장 등을 거쳐 2003년 특허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2월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1][2]
2009년 2월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11년 9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되었고, 2017년 9월 24일 퇴임하였다.
검찰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제기하였으나 재임 중에 자체 조사에서 문제가 없다고 밝혔으나 대법원장이 바뀌면서 대법원이 검찰에 수사 협조를 하여 강제징용 사건 재판 지연,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에서 재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며 2019년 1월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명재권(52세·27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양승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범죄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3] 대법원장을 지낸 법조인이 구속된 사례는 대한민국의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경력 편집
- 1970년: 제12회 사법시험 합격
- 1975년 11월 ~ 1979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 1979년 9월 ~ 1980년 9월: 서울지방법원 영등포지원 판사
- 1980년 9월 ~ 1982년 9월: 대구지방법원 판사
- 1982년 9월 ~ 1983년 9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 1983년 9월 ~ 1986년 9월: 서울고등법원 판사
- 1986년 9월 ~ 1989년 9월: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
- 1989년 9월 ~ 1992년 2월: 사법연수원 교수
- 1992년 2월 ~ 1993년 10월: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 1993년 10월 ~ 1994년 7월: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 1994년 7월 ~ 1995년 2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
- 1995년 2월 ~ 1999년 3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1999년 3월 ~ 2000년 7월: 서울지방법원 파산수석부장판사
- 2000년 7월 ~ 2001년 2월: 서울지방법원 민사수석부장판사
- 2001년 2월 ~ 2002년 2월: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 2002년 2월 ~ 2003년 2월: 부산지방법원장
- 2003년 2월 ~ 2003년 9월: 법원행정처 차장
- 2003년 9월 ~ 2005년 2월: 특허법원장
- 2005년 2월 ~ 2011년 2월: 대법원 대법관
- 2009년 2월 ~ 2011년 2월: 제1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 2011년 9월 ~ 2017년 9월: 제15대 대법원장
주요 판결 편집
이적단체 논란이 있던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사건을 유죄 판결하였으며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판단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사건에서는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무죄 판결을 했는데, “주주 배정 방식이든 제3자 배정 방식이든 발행조건에서 주주에게 불이익이나 손해가 발생했다고 해도 회사에 대한 임무 위배가 없는 한 이사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07년 5월 독재 정권시절 학내 비리로 퇴진한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이 “정부가 임명한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며 낸 소송에서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여러 공안 또는 집회·시위 사건에서, 보수적인 관점을 보였고 여성·인권 사건에서는 일부 전향적인 판결도 하였다.[4]
논란 편집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편집
논란이 되고 있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그가 대법원장으로서 법원행정처를 통해, 일선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허위 증빙 서류로 수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단서가 검찰에 적발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요구에 따라서, 대법원 재판 결과를 결정해 주었던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있고, 대법원장에 재직하던 그가 국가 예산을 횡령했다는 혐의는 검찰이 조사하고 있다. 대법원 내부의 현금으로 은밀히 관리하던 비자금의 조성, 기획 및 실행을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역시 주도하였다.[5][6][7][8]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양승태는 2019년 1월 24일에 구속되었다.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은 71년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반헌법 행위자 열전 등재 편집
양승태는 헌법 파괴자 명단인 반헌법 행위자 1차 조사 대상 115명 가운데서도 9명의 주요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6건의 간첩 조작 사건 재판을 주관하였고, 12건의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에 직접 관여하였다는 것등이 이유이다. 무죄임에도12년간이나 억울하게 복역하게한 "강희철 간첩조작 사건"의 재판관 등, 양승태는 수많은 헌법 파괴의 주역으로 지목된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는 양 전 대법원장이 현재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사법사상 최악의 대법원장'으로 규정지었으며, 최근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법농단 사건의 주역으로 문제가 되기 전에, 이미 양승태를 반헌법 행위 집중검토대상자로 선정되었다고 발표하였다.[9][10][11]
각주 편집
- ↑ “제청자문위, 시민단체의 요구와는 달리 연공서열”. 2005년 1월 17일.
- ↑ “양승태 대법관 임명 제청, "서열 기수 중시" 복귀 평가”. 2005년 1월 19일.
- ↑ “[속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헌정사상 초유’”. 중앙일보. 2019년 1월 24일.
- ↑ “판결로 본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 성향”. 2011년 8월 19일. 2016년 10월 14일에 확인함.
- ↑ “檢 "양승태 대법원, 일선 법원 예산 거둬 비자금 조성"”. 2018년 9월 5일. 2018년 9월 5일에 확인함.
- ↑ “檢 "양승태 대법원'이 비자금 수억원을 조성했다고 검찰이 밝혔다. 문건과 진술을 확보했다"”. 2018년 9월 4일. 2018년 9월 5일에 확인함.
- ↑ “檢양승태 사법부, 예산 빼돌려 비자금까지 조성 "”. 2018년 9월 4일. 2018년 9월 5일에 확인함.
- ↑ “檢양승태 대법원 ‘상고법원 홍보’ 비자금 수억원 조성= 법원 운영비 빼돌려 고위법관 활동비로 "”. 2018년 9월 4일. 2018년 9월 5일에 확인함.
- ↑ “'사법농단' 양승태, 헌법파괴자 선정…반헌법열전 1차 발표 "”. 2018년 7월 12일. 2018년 9월 5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반헌법행위자 열전'에 올랐다 "”. 2018년 7월 12일. 2018년 9월 5일에 확인함.
- ↑ “고문 피해자 그 판사 이름을 안 잊어버렸다. 양승태 반헌법행위자 집중검토 1차 보고회...양승태, 고영주, 이학봉 등 포함"”. 2018년 7월 12일. 2018년 9월 5일에 확인함.
전임 이용훈 |
제15대 대법원장 2011년 9월 26일 ~ 2017년 9월 25일 |
후임 김명수 |
전임 고현철 |
제16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2009년 2월 16일 ~ 2011년 2월 25일 |
후임 김능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