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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희(魚允姬, 1880년 6월 20일 ~ 1961년 11월 18일)는 대한민국의 기독교 전도사,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이다. 본관은 함종. 1919년 3.1운동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등과 개성 일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의 선두에서 활약하였으며, 이후 계속 독립운동을 하였다. 광복 후에는 유린보육원을 설립하고 교회 장로로 일하는 등 사회사업에 힘썼다.

어윤희
魚允姬
출생 1880년 6월 20일(1880-06-20)
조선 조선 충청도 충주
사망 1961년 11월 18일(1961-11-18) (81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 함종
직업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정치인
경력 한독당 국가여성민족행정특보위원(1950)
부모 어약우(부)
형제 어윤중(이복 오빠)
어윤적(이복 오빠)
정당 무소속
상훈 건국훈장5애족장.png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생애편집

본관은 함종(咸從)으로, 1880년 충청도 충주에서 한성부 토호 갑부 어약우(魚若愚)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익힌 뒤 1891년에 결혼하였으나, 3일 만에 남편이 동학군에 참여하였다가 도적으로 오인을 받고 사살되어 어린 나이에 미망인이 되었다.

1912년 개성(開城)의 미리흠여학교(美理欽女學校)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낙도 주민의 전도와 독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직접 〈독립선언서〉를 개성 일대에 배포해 개성 만세운동의 불씨를 제공하는 한편, 거사 당일인 3월 3일에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등과 함께 1,5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의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3·1운동 1주년을 기념해 재소자들과 함께 다시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출옥한 뒤에도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육혈포(六穴砲:권총) 탄환을 비밀리에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광복 뒤에는 개성에서 유린보육원(有隣保育院)을 설립해 고아들을 돌보았고, 6·25전쟁 때에는 부산으로 가서 10년간 교회 장로로 일하면서 사회사업에 전념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서강유린보육원을 설립해 운영하다가 1961년 11월 사망하였다. 1953년 플로렌스나이팅게일기장, 1959년 인권옹호 공로표창을 받았다.

사후편집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관련작품편집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