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신씨
한국의 성씨
영산 신씨(靈山辛氏)는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이칭 | 영월 신씨(寧越辛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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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 한국 |
관향 |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
시조 | 신경(辛鏡) |
주요 인물 | 신천, 신예, 신부, 신돈, 신유정, 신빈 신씨, 신인손, 신윤, 신석조, 신영희, 신응시, 신경행, 신경진, 신계영, 소원 신씨, 신석정, 신격호, 신상우, 신춘호, 신준호, 신동주, 신동빈, 신재기, 신건, 신학용, 신기남, 신경민, 신경림, 신정훈, 신윤성, 신나현 |
인구(2015년) | 187,731명 |
비고 | 영산·영월 신씨 대종회 |
시조
편집영산 신씨(靈山 辛氏) 시조 신경(辛鏡)은 송나라 8학사[1]의 일원으로 고려에 동래하고 1138년(인종 1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평장사(金紫光錄大夫 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고 한다.[2]
하지만 포항에 있는 4세 신몽삼의 묘에 영주신지묘라고 되어 있는데, 《신씨성관고(辛氏姓貫考)》에서는 영주(寧州)는 중국에 없고, 우리나라 녕변(寧邊)의 옛 지명이라 하며 신씨가 귀화한 성씨가 아니라고 한다.
지금의 감숙성을 송나라때엔 영주(寧州)라고 불렀다.
역사
편집9세손 신천(辛蕆)이 1294년(충렬왕 20년) 과거에 급제하여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이르렀고,[3] 신천의 동생 신혁(辛革)은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가 되었다. 신혁의 손자 신예(辛裔)가 충목왕 때 취성부원군(鷲城府院君)에 봉해졌다.[4] 공민왕 때 신예의 동생 신부(辛富)는 취산군(鷲山君)에 봉해지고, 신돈(辛旽)은 영도첨의사사(領都僉議使司)로 집권하여 개혁을 추진했다.[5]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50명, 공신 7명을 배출하였다. 신부의 손자인 신인손(辛引孫)이 세종 때 대제학에 오르고, 신인손의 아들 신석조(辛碩祖)는 세조 때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한반도 80% 이상 창씨개명을 했었어서 단체로 강제적으로 중광(重光)으로 개명했었다. 이는 시게미츠라고 읽는다.
분파
편집인물
편집항렬자
편집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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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호(浩) | 동(東) | 口식(植) | 용(容) | 口기(基) | 종(鐘) | 원(源) | 병(柄) | 口환(煥) | 철(喆) | 口현(鉉) | 해(海) | 口치(致) | 석(錫) | 口한(漢) | 목(穆) |
인구
편집- 2000년 영산 신씨 83,798명 + 영월 신씨 67,489명 = 151,287명
- 2015년 영산 신씨 102,521명 + 영월 신씨 84,905명 = 187,426명
- 2020년 영산 신씨 102,631명 + 영월 신씨 85,100명 = 187,731명
각주
편집- ↑ 현풍 곽씨 시조 곽경, 충주 지씨 시조 지경
- ↑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63>영산, 영월신씨”. 세계일보. 2013년 12월 10일.
- ↑ 신천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고려사』 권125, 열전38
- ↑ 『고려사』 권132, 열전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