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타시

일본 규슈의 중핵시

오이타시(일본어: 大分市, おおいたし, 문화어: 오이따 시)는 오이타현 중부에 위치하는 이자 현청 소재지이다.

오이타시
おおいたし
大分市



오이타 시기
1966년 2월 11일 제정
오이타 시장
1965년 6월 11일 제정
나라일본의 기 일본
지방규슈 지방
도도부현오이타현
시정촌코드44201-1
면적502.38 km2
총인구470,802명[편집]
(추계인구, 2024년 9월 1일)
인구밀도937명/km2
시목담팔수
시화サザンカ
오이타시청
시장사토 기이치로(佐藤 樹一郞)
소재지(〒870-8504)
오이타현 오이타시 荷揚町2-31

북위 33° 14′ 22.4″ 동경 131° 36′ 33.7″ / 북위 33.239556° 동경 131.609361°  / 33.239556; 131.609361
웹사이트오이타시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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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현재의 오이타 현의 대부분에 상당하는 분고국(豊後国)의 국부(国府 : 구니의 수도)가 설치됨으로써 에도 시대까지 "후나이"(府内)라고 불렸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 이름에 맞춰 "오이타"로 개명되었다.

인구로는 오이타현내 및 히가시큐슈(오이타현 및 미야자키현)에서 최대, 규슈에서는 후쿠오카시, 기타큐슈시, 구마모토시, 가고시마시에 이어 제5위의 도시이다.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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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인구
연도인구±%
1960 242,001—    
1970 289,951+19.8%
1980 385,635+33.0%
1990 429,927+11.5%
2000 454,424+5.7%
2010 473,955+4.3%
2020 477,393+0.7%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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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사키 산

오이타강 및 오노강이 형성한 삼각주 및 충적평야로 이루어진 오이타 평야와 그 주위의 구릉을 포함하고 세토 내해의 벳푸 만에 접한다. 시의 동부에는 남쪽에서 오노 강이 서부에는 서쪽에서 오이타 강이 흐르고 세토 내해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중심 시가지는 오이타 강의 하구부 서쪽에 있다. 벳푸시와의 경계 부근에 위치해 일본원숭이가 서식하는 다카사키야마 지구 및 호요 해협에 떠있는 다카시마 지구는 세토 내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최근에 시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형태로 오이타 자동차도, 히가시큐슈 자동차도가 개통해 국도 10호선, 국도 210호선 등과 만나고 있다. 시내의 교외 지역은 쇼핑센터나 뉴타운 등의 개발에 의해 인구의 증가가 현저하다.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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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토 내해식 기후에 속해 연중 온난하고 비가 적다. 연평균 기온은 16.0℃, 연 강수량은 1677.8 mm(평년치)이다. 다만 옛 오이타 군 노쓰하루 정의 지역은 쇼지다케, 고자가다케 등의 600~800m급의 산들이 늘어서 있고 내륙부로의 입구에 해당되기 때문에 대륙성 기후에 속해 평지보다 기온이 약간 낮아진다.

오이타시의 기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연간
역대 최고 기온 °C (°F) 24.6
(76.3)
25.5
(77.9)
29.3
(84.7)
31.2
(88.2)
32.7
(90.9)
35.3
(95.5)
37.8
(100.0)
37.6
(99.7)
36.5
(97.7)
32.8
(91.0)
28.0
(82.4)
25.0
(77.0)
37.8
(100.0)
일평균 최고 기온 °C (°F) 10.7
(51.3)
11.5
(52.7)
14.6
(58.3)
19.7
(67.5)
24.1
(75.4)
26.5
(79.7)
30.9
(87.6)
32.2
(90.0)
28.2
(82.8)
23.3
(73.9)
18.1
(64.6)
13.0
(55.4)
21.1
(70.0)
일일 평균 기온 °C (°F) 6.5
(43.7)
7.2
(45.0)
10.2
(50.4)
14.8
(58.6)
19.3
(66.7)
22.6
(72.7)
26.8
(80.2)
27.7
(81.9)
24.2
(75.6)
19.1
(66.4)
13.8
(56.8)
8.7
(47.7)
16.8
(62.2)
일평균 최저 기온 °C (°F) 2.6
(36.7)
3.0
(37.4)
5.9
(42.6)
10.3
(50.5)
15.0
(59.0)
19.3
(66.7)
23.5
(74.3)
24.3
(75.7)
20.9
(69.6)
15.2
(59.4)
9.5
(49.1)
4.6
(40.3)
12.8
(55.0)
역대 최저 기온 °C (°F) −7.3
(18.9)
−7.8
(18.0)
−5.2
(22.6)
−2.1
(28.2)
1.7
(35.1)
7.2
(45.0)
14.0
(57.2)
14.1
(57.4)
8.8
(47.8)
2.0
(35.6)
−2.0
(28.4)
−6.1
(21.0)
−7.8
(18.0)
평균 강수량 mm (인치) 49.8
(1.96)
64.1
(2.52)
99.2
(3.91)
119.7
(4.71)
133.6
(5.26)
313.6
(12.35)
261.3
(10.29)
165.7
(6.52)
255.2
(10.05)
144.8
(5.70)
72.9
(2.87)
47.1
(1.85)
1,727
(67.99)
평균 강설량 cm (인치)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1
(0.4)
평균 강수일수 (≥ 0.5 mm) 5.9 7.7 10.0 10.0 9.7 14.0 12.0 10.6 11.1 7.7 6.9 5.5 111.0
평균 강설일수 6.4 4.6 1.5 0.0 0.0 0.0 0.0 0.0 0.0 0.0 0.1 4.6 17.3
평균 상대 습도 (%) 62 63 65 65 68 77 77 75 74 70 69 64 69
평균 월간 일조시간 149.4 149.1 175.0 190.1 194.6 135.7 180.8 202.8 151.5 164.2 148.2 151.2 1,992.4
출처: 일본 기상청 (평년값: 1991년~2020년, 극값: 1887년~현재)[1][2]

인접한 자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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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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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타 지역은 역사적으로 분고국(豊後国)의 수도인 후나이(府内)로 알려져 있었다. 센고쿠 시대에 강력한 오토모 씨가 후나이를 본거지로 삼았고 중국의 명나라포르투갈과의 주요 교역항으로써 번영하였다. 유명한 크리스찬 다이묘인 오토모 소린은 처음으로 유럽 문화를 도입하였다. 후나이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서양식 병원이 세워졌고 첫 번째 일본인 성가대가 만들어졌다.

전국시대 후나이는 전성기에는 규슈의 과반을 손에 넣은 제21대 당주 오토모 요시노부의 밑에서 일본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개설되는 등 남만문화를 수용해 번창했다.그러나, 오토모씨는 시마즈씨 등과의 항쟁에 져 쇠퇴해, 부내는 1586년의 시마즈 이에히사의 침공(도요사쓰 전투)에 의해서 염상해 괴멸했다고 여겨진다.최근 오이타역 부근의 연속 입체 교차사업 및 구획 정리사업에 따라 오토모씨 관터를 비롯한 중세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부내의 유적이 발굴되어 2001년에는 오토모씨 관지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601년, 세키가하라 전투 전공에 따라 후나이 번(오이타 번)의 번조가 된 다케나카 시게토시에 의해 후나이 성은 대규모 개수가 이루어져 1607년에 근세 다이묘의 거성 규모가 되었다.성시 역시 시게토시에 의해 정비되어 훗날 번영의 토대가 되었다.

에도시대의 부내는, 1712년의 조사에 의하면 5,591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어 분고 최대급의 성시였다.

에도막부 말기에는 현재의 시역에 후나이번 외에 우스키번, 오카번, 노부오카번, 구마모토번, 막부의 영지가 존재했다.

메이지 시대에 후나이에는 오이타 현청이 놓였고 1889년 정촌제 시행에 의해 오이타 정이 되었다.

전국의 도시 중에서도, 오이타시는 고도 경제성장기 이후에 급격하게 성장한 도시 중 하나이다.

1950년대에는 오이타시의 인구는 10만명 미만으로 미야자키시보다 약간 적었고, 규슈(오키나와현 제외)에서는 사가시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현청 소재지였다.

1960년대부터 고도 경제성장기에 들어서자, 공업화에 의한 지역 진흥을 도모하고 오이타 지역의 발전 계획을 위해서 신산업도시 지정을 목표로 했다.인구 요건을 채우기 위해서 1963년에 쓰루사키시나 다이난정 등과의 신설,대합병을 단행해, 1964년 1월에 새로운 산업도시로 지정되자, 연안부에 신일본 제철등의 큰 공장이 진출했다. 지금까지의 촌스러운 소도시에서 큐슈를 대표하는 공업도시로 급속히 개발이 진행되어, 오이타시는 「신산도의 우등생」이라고 불렸다.

인구도 1960년대 이후 급격하게 증가해, 1963년의 합병시에는 21만 명이던 인구가 1970년에는 26만 명, 1980년대에는 36만 명, 1990년대에는 40만 명을 돌파해 거의 배증하는 현저한 증가를 보였다. 주변부 구릉지대에는 잇따라 대규모 주택단지가 조성됐고 조난단지·아케노단지·시키도단지 등 신도시가 스프롤화가 되어 특이한 교외 환경이 형성됐다.

신산업도시로서의 발전에 수반해, 1970년대에는 나가사키야, 다이에, 니치이, 쟈스코, 세이유 등 관동·간사이 자본의 대형 슈퍼가 오이타역전에 다수 진출해, 현지 백화점의 도키하등과 함께 규슈에서는 보기 드문 수도권의 교외 도시와 같은 역전형의 번화가가 형성되었다.그러나, 그 후, 상업의 도넛화가 진행되어 교외에서는 쇼핑몰이 개발된 한편, 2009년까지 중심부의 대형 슈퍼는 모두 업태 전환 또는 철퇴를 맞으며 중심부에서는 오이타역의 고가화에 따라 2015년 봄에 아뮤플라자 오이타가 개업하고 있다.

1997년 4월 1일, 중핵시로 지정되었고 2005년 1월 1일에는 사가노세키 정 및 노쓰하루 정이 오이타 시에 편입되었다.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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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타 중심 시가지

1964년에 신산업도시의 지정을 받아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집적회로 등의 가공 조립 산업이 진출함과 동시에 물류 단지의 정비, 지역 수입 촉진 계획 아래 물류의 거점으로서도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번화가는 오이타역 북쪽에 퍼져 있고 대형점 외에 센트포르타 주오 정과 갤러리아 다케 정과 같은 아케이드 상가도 있다. 규슈에서는 드물게 역전형의 번화가이며 철도나 버스 등 교통의 결속점에 있어 사람의 왕래가 많다. 그러나 최근에 교외에 대형 쇼핑몰이 출점하면서 중심 시가지에서는 연달아 대형 소매점포가 문을 닫아 활성화가 요구되고 있다. 영화관도 교외에 2개 만들어져 시의 중심부에 있던 영화 거리는 쇠퇴하고 있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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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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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타 시 출신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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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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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10호선, 오이타 시 방면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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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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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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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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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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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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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平年値ダウンロード”. 일본 기상청. 2021년 6월에 확인함. 
  2. “観測史上1〜10位の値(年間を通じての値)”. 일본 기상청. 2021년 6월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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