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석(禹天錫)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우중대(禹仲大)의 3남이고, 우탁(禹倬)의 숙부이며, 우인열(禹仁烈)과 우현보(禹玄寶)의 증조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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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6년(원종 7년)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했다.[1]

1268년(원종 9)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로서 낭장(郞將) 박신보(朴臣甫)와 함께 원의 사신인 왕국창(王國昌)·유걸(劉傑) 등을 따라 흑산도(黑山島)의 바닷길을 살폈는데, 이는 남송(南宋)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원의 조처였다.

1273년(원종 14) 서해도안찰사(西海道按察使)로 재직 중, 서해도(西海道)의 전함이 많이 파선되었다는 이유로 원의 다루가치(達魯花赤) 이익(李益)의 문책을 받고 투옥되었다.[2]

충렬왕(忠烈王)조에 전라도안렴부사(全羅道按廉副使)를 거쳐, 1280년(충렬왕 6) 감찰잡단(監察雜端) 진척(陳倜)을 비롯한 감찰사(監察司)의 관원들이 유배 또는 파직되자 낭장에서 감찰잡단으로 승진했다.[3]

이후 관직이 전리정랑(典理正郞)에 이르렀으며, 후손들이 귀해지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추증되었다.[1]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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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중원군 진척면 송강리(현 충주시 진척면 송정리)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소 뒤에는 아들 우팽의 묘소가 함께 있으며, 이후 충주는 그의 후손들의 세거지가 되었다.

묘역은 후일 아들 우팽의 묘소와 함께 충청북도 기념물 제 110호로 지정되었다.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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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자료는 『씨족원류』이다.

  • 증조부 - 우잉순(禹仍順) : 호장(戶長)
    • 조부 - 우경절(禹慶節) : 호장
      • 아버지 - 우중대(禹仲大) : 향공진사(鄕貢進士), 증(贈) 시중(侍中)
      • 어머니 -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임성박(林成璞)의 딸[4]
        • 형 - 우천규(禹天珪) : 향공진사, 우탁(禹倬, 1262년 ~ 1342년)의 아버지
        • 형 - 우천계(禹天啓) : 판서(判書)
        • 동생 - 우천우(禹天佑) : 군기소감(軍器少監)
        • 동생 - 우천성(禹天成) : 낭장(郞將)
        • 부인 - 미상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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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씨족원류』
  2. 『고려사』 「원종세가」
  3. 『고려사』 「충렬왕세가」
  4. 부인이라는 설도 같이 기록되어 있다.